김현곤 강도사 / 행 1:12-26

◎본문: 행 1:12-26

◎개요

12-14절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쓴 제자들

15-26절 유다를 대체할 맛디아를 뽑음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쓴 제자들에 관한 말씀이고, 15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유다를 대체할 맛디아를 뽑는 내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최초 부활공동체의 특징과 그 존재 방식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두 가지가 도드라집니다. 우선 그들은 기도 공동체였다는 사실이죠. 이십여 명에서 백이십 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다음 모인 그들은 주께서 그 가운데 계시며 모든 일을 주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자신들은 다만 그 결과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기도로 하나되고 순종으로 하나 됨을 유지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도행전 내내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으로 등장하게 되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죠. 그 일은 몇 날 안 되어 있을 것인데,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사명은 반드시 그 일을 전제하는 것이죠.

먼저 같은 장 4절과 6절 말씀에서 두 번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식탁 교제로 추정되는 내부 모임이었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승천이 펼쳐지는 외부에서의 모임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시내 다락방으로 옮깁니다. 누가는 두 장소의 거리가 안식일에 이동하기 알맞은 거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이동 거리를 안식일법으로 제한했는데 대략 1킬로미터 이내로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안식 후 첫날에 있었고, 사십 일 동안 계신 후 승천하셨기 때문에 그날은 안식일과 맞물리게 되죠.

제자들이 다락방으로 올라갑니다. 누가는 다락방 모임에 참석한 명단을 소개하는데, 열한 제자 외에 여인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이 함께 하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모두는 부활의 목격자들입니다. 전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부활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들이 보여준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 한 가지가 묘사됩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심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다락방에서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전,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눌 때, 예수님께서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혀가심으로 제자들은 다 흩어졌었죠. 그렇게 제자들의 마음에 상처가 있고, 괴로움이 있었지만, 예수님 부활 이후 모인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이전과는 완전 다르게, 이제는 예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마음을 하나로 모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부활공동체가 기도로 하나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 나라 사역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 기도는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즈음에 더 큰 무리가 함께 모입니다. 누가는 그 수를 약 백이십 명으로 추산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일어서서 모임을 주도합니다. 이십여 명이 채 안되는 다락방 공동체가 백이십 명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 갑작스럽지만, 부활의 예수님이 오백여 형제들에게 보이셨다는 기록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부활공동체의 첫 리더십을 감당한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유월절 만찬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죠.

누가복음 22:32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공생애 기간 동안 베드로는 늘 제자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배신의 아이콘이기도 했지만 베드로는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형제들을 굳게 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베드로가 다급히 꺼낸 의제는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유월절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누가복음에서 강조되고 있는 신학적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이 다윗적 메시아라는 사실이죠. 그래서 그의 나라가 도래했고 열둘은 주어진 소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성취로 보는데 특별히 다윗의 시편 말씀에 근거해서 그런 것이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면서 대적의 길잡이를 자처함으로 열두 제자에서 이탈했습니다. 이 일을 성경은 이미 예언했고 성취되었습니다. 유다가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유다가 배반했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주어진 일을 맡아 수행했던 자로 열두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

누가는 여기서 잠시 베드로의 진술을 멈추고 유다가 마주한 비극적 운명에 특별한 설명을 곁들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누가의 배려인 것이죠. 마태는 유다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며 제사장들에게서 받은 은 삼십을 성전에 던진 후 스스로 목을 매었다고 보고합니다. 누가는 그 후에 일어난 참상을 소개하는데, 이는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다고 밝힙니다. 특이한 점은 유다가 받은 불의의 삯으로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밭을 산 주체를 대제사장들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밭을 사는 세밀한 과정보다 결과론에 초점을 둔 진술로 본다면 결국 유다 때문에, 유다가 받은 삯으로 밭이 구매됩니다. 부정한 피 값의 주인이 되기를 모두가 꺼렸기 때문에 밭을 산 주체를 유다로 명시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시편 69편 25절과 109편 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다의 죽음과 그의 자리를 대체할 필요성을 무리에게 선언합니다. 시편 69편 25절은 의인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주의 보응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리고 시편 109편 8절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이 말씀 역시 대적자를 두고 그의 생명을 짧게 하시며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해주시라는 보응의 기도입니다. 베드로는 다윗의 예언적 기도가 고스란히 유다에게서 성취되었으므로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직분을 타인이 취하는 것도 곧바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그 직분을 맡을 사람의 자격과 사명을 제시합니다.

자격은 요한의 세례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를 특정하는 특별한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뽑힐 자의 사명은 열한 제자의 사명과 동일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가진 자로서 승천하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증인이어야 합니다. 즉 부활과 승천의 목격자여야 했습니다. 무리가 바사바라고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세우고 맛디아가 제비 뽑히게 됩니다. 여기에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하거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고 맛디아를 택하심이 하나님의 뜻인줄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이죠. 주님께서 이루신 결과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죠. 오직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택하심으로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기뻐할 일이죠. 특별히 우리에게 맡겨진 증인으로서의 직무를 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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