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행 3:1-26


◎ 본문: 행 3:1-26
◎ 제목: 예수의 이름으로

1. 본문 개요
    a. 행 3:1-10           베드로와 요한의 치유 기적
    b. 행 3:11-26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2. 본문 관찰
    a. 1-5절: 성전 미문에서 구결하는 한 사람
    b. 6-10절: 베드로와 요한의 치유와 백성의 반응
    c. 11-12a절: 솔로몬 행각에 모임
    d. 12b-18절: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신 예수
    e. 19-26절: 회개로의 초청


3. 적용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던 중 구걸하는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두 사도의 치유 사건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생명의 통로가 되어준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교회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나 개인과 우리 교회는 성도로서, 그리고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믿지 않는 내 주변의 이웃과 지인들, 그리고 지역 사회를 향하여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우리 각 개인이, 그리고 우리 전대중앙교회 공동체가 생명의 통로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돌아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절에 시간을 따라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걸인이 구걸을 합니다. 그러자 4절에 두 사도는 이 걸인을 향하여 주목하면서 ‘우리를 보라’고 첫 번째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5절에 이 걸인은 ‘무엇을 얻을까 하여’ 사도를 적극적으로 응시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두 번째 명령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정직하게 말합니다. 자신들에게는 그 걸인에게 줄 금이나 은이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사실 베드로가 ‘내가 너에게 줄 은이나 금이 없다.’고 하는 말은 지금 그들을 향하여 무엇을 얻어 볼까하는 걸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언짢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명령,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는 말이 그의 마음에 기대감을 심어 줍니다. 사실 평생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 걸으라는 명령은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손이 그 사람의 오른 손을 잡아끌었고, 그 때 그의 발과 발목의 근육과 힘줄이 작동하여서 일어나게 됩니다. 일어날 뿐 아니라 서서 걷고 뛰기까지 합니다.

    오늘이 기적의 내용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지금 베드로의 말과 행동에 반응하는 ‘나면서 못 걷게 된 걸인’의 어떤 믿음에 대해서도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장애인이 낫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며,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아! 저 사람들이라면 나를 치유해 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조차도 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저 작은 적선을 기대했을 뿐인데 인생을 바꾼 기적의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번에 성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자신에게 베풀어진 이 놀라운 기적을 확인하느라 그 걸인은 연신 뛰고 걷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기뻐 뛰며 찬양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10절에 그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인 줄을 알아보고는 사람들이 이 일을 ‘심히 놀랍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1절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습니다. 자신을 걷게 한 놀라운 능력을 행한 당사자들을 백성들 앞에서 지목합니다. 그러자 ‘솔로몬 행각’이라 불리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을 향하여 12절에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왜 놀랍게 여기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을 왜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룬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는 겁니다.

    베드로가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자신들에게 쏠리고 있는 시선을 오롯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어서 ‘두 번째 설교’를 시작합니다. 앞선 2장에서의 ‘첫 번째 설교’에서는 특별한 호칭 없이 하나님을 언급했다면, 두 번째 설교에서는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거론합니다. 그리고 이 세 족장을 가리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호칭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이다’입니다. 이 단어는 ‘노예’이기는 하지만 주인이 개인적으로 아끼고 귀하게 여길 때 사용됩니다. 소위 사 53장에 ‘고난 받는 종’의 예언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한 종으로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칭호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데, 이스라엘은 그 예수님을 거절하고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고난 받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게 하셨고, 자신들이 그 일에 증인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자신들이 앉은뱅이 걸인을 일으킨 사건은 바로 그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고, 그 믿음이 그의 다리를 강하게 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청중들을 초청합니다.

    베드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지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했음을 말하며 회개의 길로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사건은 무지의 결과였지만, 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펼쳐진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앞서 삼천 명의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솔로몬 행각에 모인 5천명의 사람에게도 동일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나님께 돌이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결코 무지함이 한없는 용서의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완악함으로 그 책임을 끝까지 거절하는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뿐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신 18:18절에 모세가 언급했던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세울 것이고, 그의 모든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면서 결국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창 12장에 아브라함에게 ‘너의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언약하셨을 때에 ‘그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그 씨’를 먼저 이스라엘에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돌이켜 악함을 버리고 구원을 얻게 하는 기대를 가지셨는데, 초림 때에는 무지하여 거절하였고, 이제 성령의 시대에는 돌이켜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철저하게 병 고침의 기적이 인간적으로는 믿음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베드로의 ‘기적에 대한 접근 방식’을 통해 어떤 가르침을 얻습니까? 기적은 그분의 일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것에 위축되거나 타인이 가진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행하는 사역 또한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와 방법으로 일하실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과 사역에 충실 하는 그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관계를 통한 신뢰에서 자라갑니다. 주님과의 관계 깊이에 따라 우리는 내 뜻과 방법보다 그 분의 뜻과 방법을 더 신뢰하고 그분의 일하실 여지를 더 두는 삶으로 더욱 성숙하고 자라갈 것입니다. 성도는 주의 생명의 능력이 흘러가는 통로여야 합니다. 지금 능력과 믿음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더욱 주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믿음이 자라가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때와 방법으로 우리 안에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더불어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놓치지 않음으로 주님께 더욱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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