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행 6:1-15


◎ 본문: 행 6:1-15
◎ 제목: 교회의 새로운 일꾼들

1. 본문 개요
    a. 행 6:1-7           일곱 사람을 택함
    b. 행 6:8-15           스데반의 사역

2. 관찰
    a. 1-2절: 사도들의 사역 위기
    b. 3-4절: 선택과 집사를 위해 일곱 사람을 세우기로 결정함
    c. 5-7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움
    d. 8-10절: 스데반을 통해 드러난 기사와 표적
    e. 11-15절: 스데반을 집아 들인 공회의 도전

3. 적용
    초대교회 공동체가 양적으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자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도들은 그것을 필요에 따라 나누었는데, 숫자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구제업무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요 구제 대상은 과부들이었는데, 출신 성분에 따라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로 나뉘었습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이 헬라파 과부, 아람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이었지요. 그런데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에 비해 제대로 도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 결과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기 과부들을 차별한다고 강하게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정확한 원인 진단과 해결책 마련에 즉각 나섭니다. 사도들은 모든 것을 꼼꼼하게 챙길 여력이 없어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계를 메워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일꾼을 세우는 것은 단지 구제를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열두 사도는 모든 제자들을 불러서 방향을 제시하면서, 전반적인 일을 맡을 일곱 사람을 선택할 것을 제자들에게 요청합니다. 왜 일곱입니까? 숫자에 완전의 의미를 부여한 유대적 관점에서부터 당시 주요 의결을 위해 ‘7인’을 선발했던 헬라적 관점까지를 모두 아우르기 위한 고려였습니다.

    사도들은 일곱 사람을 정하기 위해 ‘선별 조건’을 제시합니다. 먼저 일곱 사람은 ‘제자 그룹 가운데서’ 선별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즉,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도들과 친밀한 교감이 있고 복음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 가운데에서 세워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 기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도들에 방불할 만큼 성령에 강하게 붙들려 그분의 뜻을 분별할 지혜를 가진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기준을 세웁니다. 그리고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사도들은 말합니다. 공동체 안과 밖에서 신망이 두터운 덕스러운 자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일곱 사람은 예수의 공동체를 대변할 만큼 건강한 리더십을 가진 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해서 ‘스데반’을 필두로,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사람 니골라’ 이상 일곱 사람이 세워집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일곱 집사들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소외당한 헬라파 과부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헬라파 위주로 일곱 집사가 세워 진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헬라어에 능통하면서도 분별의 지혜를 위해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신뢰받는 지도자를 세워 분열된 공동체를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하려고 그렇게 했으리라 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며 이 일곱 집사에게 직무를 맡김으로 시도들의 사역과 공동체 돌봄을 중심으로 한 일곱 집사의 사역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어서 예루살렘 제자의 수는 심히 증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의 크기와 조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인과 리더’들을 세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대중앙교회가 늘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성령과 지혜’에 충만한 하나님 나라와 이 땅을 위한 리더들로 세워져서 온갖 나뉘고 갈라진 이 세상을 하나 되게 하고, 그 일을 위해 교회가 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더욱 기도를 모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더불어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귀한 영적 리더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리더는 목사나 장로, 권사만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영적 리더’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과 지혜’에 충만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지는 모든 일이 ‘질적, 양적 부흥’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의 힘과 능력, 재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될 때에 온전케 됨을 믿고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누가는 6:8-15의 ‘스데반’의 사역을 통해, 세워진 일곱 집사가 단순히 ‘구제’를 위해 세워진 ‘기능인’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킵니다. 사도들의 표적이 ‘스데반’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스데반은 앞선 3절에 제시된 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으며, 5절에 나타난 것처럼 믿음이 충만하였을 뿐만 아니라, 8절대로 은혜와 권능이 넘쳐났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그를 통해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큰 기사와 표적에 대해 ‘이방 지역에서 노예로 있다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후 예루살렘에 건너와 정착한 유대인’들이 도전적인 논쟁을 펼칩니다. 하지만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당할 재간이 없지요.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종교권력을 힘입기 위해 중상모략으로 판을 키워 스데반을 곤경에 빠뜨립니다. 몇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 증인으로 삼아 율법 모독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스데반을 체포하고 종교재판이 진행됩니다.

    거짓 증인들은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뜯어고치겠다고 한 내용을 스데반에게서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인 ‘성전과 율법’을 꺼내 든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넘겨진 이유가 이 문제 때문이었잖습니까? 공회는 이제 스데반의 입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누가는 15절에 언급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후반부에 ‘스데반 집사’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고, 이에 대해 논쟁하는 가운데에 성령과 지혜로 인하여 전혀 꿀리지 않으며, 결국 이것이 ‘거짓 증언’의 빌미가 되어서 종교재판까지 받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걸까요?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것은 비단 ‘목회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스데반’은 명목상으로는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 사역에 집중하고 ‘구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직분자’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곱 집사’들을 그런 용도로만 쓰시려고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스데반은 종교재판 가운데 복음을 변증하다가 순교하게 되고, ‘빌립 집사’도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늘 ‘성령과 지혜’에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기능인’이 아닌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참 제자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채워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채워지고, 기도로 채워져야 성령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그러하기에 제자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어야 하고, 모여서 기도하고 흩어져 골방에서 부르짖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6월 마지막 주일에 장로와 권사를 세우는 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분자로 세워져야 할까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이 채워진 사람’, ‘예배를 사모하고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구할 줄 아는 사람’이 세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람들이 ‘교회의 새로운 일꾼’으로 세워질 때에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더욱 하나님 앞에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부흥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 더욱 간절하게 기도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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