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7:1-16
◎개요
1-16절 스데반의 설교
1-2a절 서론
2b-4절 아브라함의 이주
5-8절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과 할례 언약
9-16절 요셉 이야기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스데반의 설교에 관한 말씀입니다. 네 단락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1절부터 2절 상반절까지는 서론이고, 2절 하반절부터 4절까지는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한 말씀이고, 5절부터 8절까지는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과 할례 언약에 관한 말씀, 그리고 9절부터 16절까지는 요셉의 이야기 내용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설교 중 가장 긴 설교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데반이 설교 전체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거대한 이스라엘 역사를 인물 중심의 네 페이지 역사로 개관합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과 솔로몬이죠. 이를 통해 역사에 새겨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과 요셉이 등장을 합니다.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이 등장을 합니다. 스데반은 구제와 관련해 선별된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성령충만했던 스데반은 구제를 넘어 증인 사역에 동참하게 되죠. 누가는 스데반의 사역의 독립성을 돋보이게 서술합니다.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고발한 자유민들이 스데반을 거대한 유대 종교권력 속으로 밀어 넣어버립니다. 고발 내용은 그가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고발 내용이 사실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스데반이 입을 열어 변론하기 시작합니다.
스데반은 공회원들과 재판에 참석한 모두를 향해 들으소서라고 호소하며 변론을 시작합니다. 스데반은 청중을 모두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로 끌고 들어갑니다. 물론 주인공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그의 생애에 들어오신 하나님이시죠. 스데반은 그분을 영광의 하나님이라 칭합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입니다.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모르던 아브라함 생애에 하나님은 영광으로 들어오셔서 참 신이심을 증명하셨죠. 그리고 아브라함의 전 생애에 그 영광을 충만하게 담으시며 위대한 약속을 선사하십니다. 이 영광은 스데반이 설교를 마친 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볼 때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되죠.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임하셔서 보이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창세기 11장 31절, 32절,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실 때는 그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으로 옮긴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5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창 15:7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라함 생애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의 본토와 친척들의 땅인 우르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옮기게 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옮긴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그 땅이 바로 지금 설교를 듣는 청중이 두 다리로 서 있는 이 땅임을 강조합니다. 스데반은 그때와 지금의 두 지평 사이 이천 년의 역사적 간극을 잇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지금 자신들의 하나님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죠. 지금 그들은 아브라함이 약속으로 받은 땅에서 후손으로서 살아가며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아브라함이 이 땅에 와서 받은 것은 자신이 유업으로 삼을 실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에는 아득히 먼 약속이었죠.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대를 이을 자식도 없는 그가 자식을 얻을 것이고 이 땅은 그와 그 자식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었죠. 여기에서 그의 후손은 단수로 직접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가리키지만, 그의 후손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물론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씨는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스데반이 모를 리 없죠. 하지만 지금은 아브라함의 서사에 몰입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땅을 유업으로 받겠지만, 그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로 살 것을 예고하시죠. 그 다른 땅은 누구나 아는 애굽이었습니다. 그 땅 사람들의 종이 되어 400년, 정확히는 43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게 되죠.
이 부분은 모세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그 종 삼은 나라를 심판해 결국 그 후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이키실 것이고, 그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그 징표가 아브라함의 할례의 언약이죠. 그 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얻었고, 8일만에 할례를 행함으로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게 되죠. 그리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 야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스데반이 아브라함부터 야곱까지 족장이야기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특별히 부르시고 약속하시며, 그 부르신 자에게 주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록 언약의 당사자 아브라함이 생전에 확인할 수 있는 성취 범위는 지극히 비좁을지라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전부를 거대한 역사를 두고 신실하게 이루신다는 겁니다. 이 메시지는 아브라함 이후 모든 후손들에게 들려지게 되는 복음이 된 것이죠.
스데반은 야곱에 대해 간략하게 열두 아들을 낳은 이야기를 말하고 요셉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죠. 그중 여럿이 요셉을 시기해서 애굽으로 팔아넘겼죠. 사실 형들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갈 줄 모르고 죽이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긴 것이죠.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가서 팔죠. 스데반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이 당하는 모든 환난에서 지켜주실 뿐 아니라,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사 애굽의 통치자, 총리로 세우셨다고 요셉의 생애를 요약합니다. 요셉은 철저히 타인의 손에 던져지고 팔리며 세워지는 생애를 살지만, 요셉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이었음을 스데반은 강조합니다.
결국 형들이 사지로 내몰았던 동생 요셉이 도리어 사지로 내몰린 형들을 구하게 됩니다. 요셉의 떠밀린 자리가 도리어 온 가족을 구원할 자리요 언약 성취의 현장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결과인 것이죠.
스데반이 말한 내용은 이미 종교지도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일하심의 절정인 예수님에 대해 스데반과 입장이 달랐죠. 같은 성경을 읽는데, 이해가 전혀 다른 것이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였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나는 괜찮다, 나는 옳다, 나의 이해가 맞다라는 과신 혹은 맹신일 수 있다는 것이죠.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면 그 신념이 단단해지고, 하나님이 개입할 자리는 더 줄어들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괴물 종교인이 되는 것이죠. 당시 종교지도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예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옳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할 때, 주님의 섭리를 맛보게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기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우리는 항상 틀리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말씀 앞에 겸손함으로 서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