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8:9-25

◎본문: 행 8:9-25

◎개요

9-13절 마술사 시몬의 등장

14-25절 베드로와 요한의 사마리아 방문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9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마술사 시몬이 등장하는 장면에 대한 말씀이고, 14절부터 25절까지는 베드로와 요한의 사마리아 방문에 관한 말씀입니다.

빌립 집사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 밖으로는 처음으로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누가는 빌립 집사를 통한 성령의 역동적 복음 사역을 특별히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선 마술사 시몬이 등장합니다. 시몬의 사회적 영향력은 남달랐습니다. 마술이라는 독특한 기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누가는 시몬이 부리던 주술과 마법에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응을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마술적 속임수로 사람들이 자신을 천상의 능력을 덧입은 특별한 존재로 믿게 했을 것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신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고,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사마리아 성을 지배해 왔던 것입니다.

누가의 인물 묘사에서 빌립과 시몬이 참과 거짓으로 완벽하게 대조됩니다. 빌립은 주술과 술수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복음의 말씀을 전했고 그와 함께하신 성령을 통해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빌립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앞서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에서 청중은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들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지는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믿고 따랐던 시몬보다 빌립을 통해 더욱 뛰어난 권세와 능력을 경험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빌립을 따랐습니다. 빌립의 전도에 많은 남녀가 세례를 받습니다. 시몬의 반응이 예의주시하게 되죠.

오랜 세월 영주 노릇을 해왔던 자신의 영적 영토를 순식간에 빌립에게 빼앗길 신세가 되었다면 적극적으로 대적할 만도 한데, 뜻밖에 시몬도 빌립이 전한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빌립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빌립의 표적과 능력이 자신이 속임수로 꾸며낸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시몬의 믿음과 빌립을 따르는 그의 진심을 의심할 근거가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본문을 읽었기 때문에 시몬이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사역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소식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죠. 핍박으로 흩어진 것이 사도들과의 모든 교류까지 단절시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은 예루살렘 사도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공동체가 핍박으로 순식간에 와해되듯이 흩어진 일에 당황했을텐데, 이 흩어짐이 복음전파의 기회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지역이 사마리아 지역이었다는 것이죠. 사도들은 진상 파악을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파송합니다. 아쉽지만 누가는 사도들과 빌립 집사의 조우를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광야에서 등장하기까지 빌립 집사는 더 이상 등장을 하지 않죠. 누가가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 집사의 놀라운 사마리아 사역에는 앞서 사도들의 사역과 비교할 때 복음 전파와 표적과 기적, 믿음의 돌이킴, 그리고 세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등장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 아직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다는 것이었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듣고 돌이켜 세례받은 자들에게 즉시 성령이 선물로 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의 사역에서 성령의 임재는 아직이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빌립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온 목적이 상황 파악을 넘어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 충만한 빌립을 통해 놀라운 사역이 펼쳐졌지만, 아직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임재하지 않았으며, 성령은 사도들을 통해서 임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죠. 마치 사도들이 사마리아를 방문하기 전까지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리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이것이 성령은 오직 사도들만을 통해서 임재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한 성령 임재에 어떤 정황적 공식이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도들의 확증이 반드시 필요했다라는 말이죠. 이것은 유대 예루살렘 신앙공동체와 사마리아 공동체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 높이 쌓인 적대감으로 이루어진 담장을 쉽게 넘을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아무리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았다해도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형제로 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들을 형제로 품기를 거부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방문해 안수하여 기도하자 비로소 성령이 임하시죠.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 위에도 임재하셨다는 것, 이것이 그들을 형제로 품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인 것이죠. 베드로와 요한에게 성령의 임재는 빌립 집사를 통한 사마리아 사역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믿게 하는, 부인할 수 없는 근거였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죠.

시몬의 반응이 이어집니다. 시몬은 자신과 차원이 다른 빌립을 밀착해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베드로와 요한은 빌립보다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의 눈에 안수기도라는 주술적 행위도 있었고 무엇보다 빌립이 하지 못했던 영적 능력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장 사도들에게 돈을 내놓으며 자신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반응 때문에 앞서 빌립이 전한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은 모든 신앙 행위가 거짓이었다고 전체를 부정하는 학자들이 다수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냐는 것입니다. 지금 시몬은 복음을 오해하고 성령에 무지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성령을 돈으로 매수할 수 있을 줄 알 정도로 무지했습니다. 베드로는 거두절미하고 은과 함께 너가 망할지어다라고 저주를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복음과 관련해 얻을 분깃, 복과 은혜에서 그가 무관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곧바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시몬이 그렇게 구한 이유가 그가 악독과 불의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예루살렘 유대인들처럼 시몬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런 요구를 한 것입니다. 그런 시몬에게 베드로가 길을 안내하는 것이죠. 그러자 시몬이 주저함 없이 그런 저주가 임하지 않기를 기도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누가가 결말을 열린 상태로 두는 바람에 학자들은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로 나뉘어집니다. 베드로가 회개를 촉구했고 시몬이 즉각 반응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긍정적 결과를 상상할 수 있죠. 베드로와 요한은 이처럼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해 확인합니다. 이제 두 사도는 생생하게 경험한 성령의 사역을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 마을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담장을 주저하지 않고 넘게 된 것이죠.

마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라는 넘을 수 없는 담장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담장을 다 무너뜨리신 것처럼, 이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복음은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는 것이죠. 그 복음이 결국 우리에게도 전해져서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로 하여금 복음이 전파되어지고 은혜가 흘러가도록, 우리도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있는 어디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축복의 통로가 되셔서 복음이 전해지고 은혜가 흘러가도록 사용되어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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