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행 10:1-16

◎ 본문: 행 10:1-16
◎ 제목: 장벽을 허무시는 하나님

1. 본문 개요
    a. 행 10:1-8           백부장 고넬료의 환상
    b. 행 10:9-16           베드로의 환상

2. 관찰
    a. 1-2절: 백부장 고넬료에 대한 설명
    b. 3-4절: 천사의 방문과 베드로를 청하라는 명령
    c. 5-12절: 보자기 환상
    d. 13-16절: 부정과 정결

3. 적용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장벽을 세웁니다. 성별과 신분과 나이와 지역과 인종 등으로 구분하고 나누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장벽들을 허물어 ‘유대와 사랑’ 속에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그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엡 2:14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기까지 감당하신 사역이 다름 아닌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는 거죠.

    오늘 본문 1절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라는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완전한 이방인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는 군인이고 뼛속까지 이방인인데, 뜻밖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는 그 뿐만 아니라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표현은 당시 유대교를 향한 동경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생활양식을 경건하고 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 종교에 귀의하기를 원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방인이, 그것도 지위가 높은 백부장이 유대교에 귀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주변 가난한 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10:22절을 보면 고넬료 자신의 동족 이방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 모두를 구제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고넬료는 폭력적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동료 로마 군인들과 달리 약자에게 긍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또한 고넬료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사람이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려 애썼다는 점입니다. 고넬료가 2절에 ‘기도했다.’고 하는 부분은 유대인들의 정해진 기도 시간에 맞춰 기도했다는 겁니다. 그 일은 일회성이 아니라 고넬료가 가진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그 결과 3절에 ‘제 구시’, 우리들의 시간계산법 대로라면 오후 3시 경에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선명한 환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향해 다가온 겁니다.

    당시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통한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를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편협한 생각의 장벽을 허물고 구원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열렸음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언약의 범위를 확장시키시고 울타리를 여심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선교의 주체가 되셔서 구원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실수하는 부분은 이른바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구원 받을 사람을 정하는 행위’입니다. ‘저 사람은 구원 받기는 영 글렀어!’라고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해버리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복음의 장벽을 쳐버립니다. 때로는 자기보다 너무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저 사람은 예수가 필요 없지 않을까? 저렇게 잘 사는데 말이지.’라고 울타리를 칩니다. 그와 반대로 너무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저렇게 무식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 무슨 복음이야? 저런 사람 오면 교회 수준 떨어져’라고 벽을 친다는 겁니다. 전자도, 후자도 결코 하나님 앞에 칭찬 받지 못할 어리석인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 군인’은 예수님을 죽인 상징적인 대상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인되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로마 군인, 그 중에서도 ‘백부장’을 이방인 가운데 첫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약 백성의 울타리 안으로 초청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장벽을 허물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의지에 적극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고넬료는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이방인이자 유대교를 믿는 자로서 ‘예수의 추종자’를 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몸에 배어 있는 순종으로 이 일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넬료가 이 환상을 완전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이 일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단순한 순종으로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 알고 이해한 후에 순종하겠다는 태도로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9절에 고넬료의 부하들이 욥바에 다다를 즈음인 제 6시, 우리 시간으로는 정오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을 때에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원래 유대인들에게 정해진 기도 시간은 오전 9시와 오후 3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정오에 기도합니다. 추측해 보면 오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밀려 복음을 전하다 기도 시간을 놓쳐 끼니도 거른 채 정오에 기도했을 것으로 여러 학자들이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하시려고 일부러 베드로의 기도 시간을 늦추시고,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에 정해 놓은 ‘부정한 동물’들이 큰 보자기에 들어 있는 것을 보는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 가운데 그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는 깨끗하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치지요. 지금 아침도 먹지 못해 매우 시장한 가운데 있음에도 베드로는 거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막 7:19절에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잊고 여전히 구약의 관습과 시선에 머물러 있음을 이 환상 사건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주를 가장 가까이 따랐던 베드로 아닙니까? 그럼에도 도래한 새 시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세 번에 걸쳐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이 환상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구약 시대의 장벽’을 내려놓을 것을, 그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향한 차별을 내려놓을 것을 설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굳건한 신념이나 지식이 항상 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수정되고 깨지고 확장될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소유해야 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복음의 본질 안에서 언제나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교정해 주실 때 순종하여 주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