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13:1-12

◎개요

1-3절 바나바와 사울 파송

4-12절 구브로 전도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는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는 내용이고, 4절부터 12절까지는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하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부조는 기근과 핍박으로 힘겨웠던 예루살렘 교회에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방문을 마친 두 사람은 마가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오죠.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베드로의 체포 소식에 제자들이 모여 기도했던 곳입니다. 얼마 후 안디옥 교회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죠. 당시 그곳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누가는 다섯 명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와 교사라는 타이틀은 리더십의 성격을 짐작하게 합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리고 사울입니다.

이 인물들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합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아마 흑인일 것이다. 니게르라는 단어는 검다를 의미하는데, 영어에서 흑인을 비속어로 부를 때, 니그로라고 부르기 때문에, 시므온은 흑인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죠.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시므온을 구레네 시몬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사람이죠. 만약 시므온이 구레네 시몬이면 알렉산더와 루포가 그의 아들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구레네 출신 루기오는 안디옥 교회 초기 설립 일원이었을 것으로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마나엔은 헤롯 안티파스의 젖동생으로 불렸는데, 젖동생이란 표현이 실제 문자적 의미인지 아니면 가까운 친구인지 모호합니다. 당시에는 함께 자란 매우 가까운 친구를 뜻하는 단어로 이 단어를 쓰기도 했다는 것이죠. 여하튼 마나엔은 궁중에서 자랐을 것이고 남다른 지위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등장하는 헤롯 왕가의 구체적인 정보의 출처가 마나엔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을 합니다.

누가가 이처럼 리더십을 소개하는 까닭은 안디옥 교회 사역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는 사건을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이들이 모여서 예배하며 금식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구분해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지만,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합니다.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파송을 하죠. 안디옥 교회가 두 사람을 보내는 형식이지만 부르시는 주체는 바로 성령이시죠.

교회의 보냄은 성령이 주도하시는 사역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 참여를 의미합니다. 이 땅에 보냄 받은 교회가 또 다른 사역자들을 보내는 것이죠. 교회는 소수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가라고 명하신 아직 가지 않은 영역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단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더욱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결단하고 동참하는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가 두 사람을 보냈지만, 누가는 그 보냄의 주체를 성령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성령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며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거죠. 두 사람이 세워졌지만 수행원으로 마가가 동행을 합니다. 세 사람은 육로를 따라서 실루기아 항구, 그 항구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에서 세 번째 큰 섬인 구브로로 향합니다. 그곳을 첫 행선지로 삼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성령께서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이죠.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자 예루살렘 박해 때 흩어진 제자들의 사역지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지중해의 다양성을 아우르는 이민자들의 섬이라고도 합니다. 그 중에는 유대 이민자들도 꽤 거주하고 있었고 여러 회당이 존재하고 있는 섬이었습니다.

먼저 살라미에 당도해 가장 먼저 유대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후 섬 전체를 횡단해서 살라미 도시의 반대편 바보에 이르게 됩니다. 누가는 그들이 바보라는 도시에서 마주했던 중요한 사건 하나를 기록합니다. 바보라는 도시는 비교적 최근 재건된 도시로 그리스 신들을 숭배하며 구브로 섬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한 도시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바예수,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이죠. 바예수라는 유대인을 만납니다. 누가는 그를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로 묘사하고 있죠. 누가는 바예수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단순히 일시적 동석이 아닙니다. 당시 고위 관료들은 점성술사나 선견자를 곁에 두곤 했는데 바예수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눈속임의 마술과 거짓 예언을 동반한 화려한 말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려 했을 것입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지혜는 관료로서 똑똑한 자질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헬라 지혜 사상에 대한 남다른 그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을 합니다. 바예수를 곁에 둔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죠. 서기오 바울이 바예수에게 정서적 지배를 당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일 누가가 이름을 통해 어떤 지배적 관계를 의도했다면, 바예수에 붙잡힌 바울과 예수에 붙잡힌 바울을 대조하고 있는 것이 되겠죠.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나바와 사울 일행을 초청해 그들이 전하는 지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때 바예수는 총독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 영향력을 잃어버릴까 염려하죠. 총독이 낯선 사람들의 새로운 지혜에 심취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적극 막아서고, 서기오 바울의 마음이 그들에게 돌아서지 않도록 안간힘을 씁니다.

바예수의 저항은 거셌습니다. 행동의 주도권은 사울이 가져갑니다. 여기서부터 누가는 사울 대신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바울이 성령충만하여 바예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악행을 꾸짖으며 강력하게 저주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바예수를 마귀의 자식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으로 신앙적 이름까지 가졌지만 바예수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저 타인을 속여 자기 배를 불리는 사기꾼이었죠. 바울이 이처럼 분노의 저주를 바예수에게 쏟은 것은 그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은 성령께서 서기오 바울을 만나게 하셨고, 그를 믿음으로 돌이키려 하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그 길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죠. 바울은 그에게 더 이상의 악행을 멈추라고 하며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 즉시로 결국 얼마 동안 맹인이 되어서 해를 보지 못하게 되죠. 바예수의 즉각적으로 맹인이 된 사건은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지혜가 참 지혜인지 명명백백히 확인하게 된 것이죠. 총독은 사도 바울이 전한 주의 가르치심을 믿고 주의 바른 길에 들어섭니다. 주의 가르치심은 바예수의 거짓 가르침과 대조되는 단어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을 통해 서기오 바울이 바예수가 드리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죠. 오히려 바예수는 자신이 서기오 바울에게 했던 정신을 흐리게 했던 것, 결국 자신이 얼마 동안 맹인이 되고, 해를 보지 못하게 되죠.

바나바와 바울의 첫 선교여행은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갔고 거기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만나게 되고, 믿게 되는 놀라운 사건으로 시작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바로 놀라운 사건인 것이죠. 복음을 만나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복음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사건들이 교회 공동체에 충만했고, 그 무엇도 복음을, 성령님의 일하심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인도하셔서 이루어주셨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 전대중앙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기를 합심하여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