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행 18:12-23


◎ 본문: 행 18:12-23
◎ 제목: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걷는 여정

1. 본문 개요
    a. 행 18:12-17           고린도에서 총독 앞에서의 재판
    b. 행 18:18-23           안디옥으로의 귀환

2. 관찰
    a. 12-13절: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함
    b. 14-17절: 갈리오가 보신주의로 유대인들의 고발을 받지 않음
    c. 18절: 겐그레아 방문
    d. 19-21절: 에베서 방문
    e. 22-23절: 가이사랴에서 안디옥

3. 적용
    신문사 기자, 방송국 콘텐츠 에디터로 살다가 갑자기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이선영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에세이 ‘잃어버린 길 위에서’라는 책에 자신이 여행을 하다가 만난 ‘애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는 한 일본계 여주인과의 일화를 소개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여주인은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들을 고생고생 해서 잘 키워 출가시킨 후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여유 있는 삶을 살법한데 이 ‘애어비앤비 숙소’ 사업에 뛰어 들었다는 겁니다. 이선영 작가가 ‘숙소 관리가 힘들지 않냐?’고 묻자, 너무 힘들다고, 하루에 5시간 밖에 못 잔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고생하며 숙소를 운영하시느냐고 다시 묻자,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할 때 너무 행복하거든, 그래서 지쳐도 계속하는 거야!”라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지쳐도 우리로 하여금 계속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게하고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앞서 제가 예화로 든 한 여인은 ‘행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선교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하게 만든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가 하나님 앞에 비장한 각오로 이 일에 헌신한 그의 정신력이 원동력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은 바울이 무엇을 원동력 삼아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역을 잘 감당하였는지에 대해 답을 줍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소개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수사가이자 웅변가였던 ‘세네카’의 아들입니다. 고대 문헌에 갈리오가 AD 52년 1-7월에 아가야의 총독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보통 7월부터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갈리오는 51년 7월에 부임했을 것인데 이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던 AD 50-51년과 역사적으로 일치합니다. 고린도와 관련된 행정적 책임은 ‘아가야 총독 갈리오’에게 있기에,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이 일제히 바울을 총독 갈리오에게 데리고 가서 고발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갈리오에게 바울에 대해 고소하기를 13절에“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이율배반적인 가르침을 바울이 선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바울이 변론하려 하자 갈리오가 선수를 칩니다. 14-15절이지요. 요약하면 ‘만약 바울의 가르침이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면 내가 처리하는 것이 옳지만, 너희 종교법과 관련된 것이면 너희 스스로 처리해라. 나는 끼어들지 않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갈리오는 유대인들을 쫓아내고, 이에 분노한 이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화풀이 상대로 삼아 마구 때립니다.

    지금 갈리오의 처분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보신주의적 행정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바울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18:10절에 앞으로도 참 다양한 방법으로 바울, 너와 함께 하며 너를 해칠 자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을 하나님은 거듭 성취해 가시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사역의 원동력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을 겁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거부할 수 없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거점 삼아 계속해서 선교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될 즈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소아시아 선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강권하는 역사로 ‘유럽’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의 사역은 다른 많은 개척지와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짧게는 2-3일,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이상을 머물지 않았던 그가, 고린도에서는 1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가 1년 6개월을 보낸 것도 그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 곳에 머물도록 하셨기 때문에 바울은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소동으로 인해 결국 정들어 동고동락한 형제들과 작별을 고하지요. 그리고 19절에 에베소에 머물게 되는데 20절을 보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또 작별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결정이었음을 21절이 대변해 주지요. 뜻이 있다면 또 만날 것이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바울은 18절 하반절에 ‘겐그레아’라는 곳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나실인 서약’과 연관이 있다고 여러 학자들이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미 선교 사역에 있어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자발적인 나실인 서원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 서원의 종료를 의미하는 삭발을 겐그레아에서 했습니다. 이 나실인 서약은 분명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헌신적인 충성을 의미할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겠다는 결연한 다짐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그의 서원과 강력한 의지가 자신의 선교 사역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또한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과연 바울의 사역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울의 비장한 소원과 서원도 아니었습니다. 치밀한 준비와 전략만으로 자신의 사역의 원동력을 삼은 것도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그의 원동력의 근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아마도 깨달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보신주의적 관료주의’ 조차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펼치게 하시는 분이심을 말입니다.

    그러하기에 철저하게 붙잡하야 하는 사역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임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 철저한 하나님의 방식으로 되어야 함을 굳게 붙드는 것이 바로 바울의 사역의 원동력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원동력의 기초 위에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과 열정도 빛을 발하는 것임을,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후회 없이, 후퇴 없이 감당할 수 있음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팎을 보면 세속주의와 종교혼합주의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제가 지난 금요기도회 시간에도 잠시 나누었지만, 요즘은 정말 ‘믿음으로 감당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이런 것이 교회 안에서 너무 낯선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점차 세속주의적, 혼합주의적으로 바뀌니 세상의 방식인 ‘이성과 논리, 합리’가 ‘믿음으로의 도전과 헌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내어 맡기’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을 대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교회의 사역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회복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발견하고, 그것을 사역의 자양분으로 삼아 그 일에 절제와 헌신과 섬김으로 주의 귀한 사역을 감당하려는 의지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그러한 경건의 사람을 오늘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이 새벽에 주의 사역의 진정한 원동력인 ‘주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머물라 하시는 곳에 멈추고, 가라 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주권을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맡기면서도, 그 가운데에서도 기꺼운 헌신과 치밀한 전략과 전후 상황을 예측하는 분별력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전대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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