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18:24-19:7

◎본문: 행 18:24-19:7

◎개요

24-28절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

19:1-7절 바울의 에베소 사역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8장 24절부터 28절까지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에 대한 내용이고, 19장 1절부터 7절까지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 관한 말씀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아볼로가 등장을 합니다. 누가는 아볼로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다. 언변이 좋고라는 단어는 로기오스라는 단어로 특별히 말에 있어서 매력적이고 설득적임을 의미하는데, 단순한 말재주가 아닌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을 받아 철학과 수사학에 두각을 나타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유대 공동체에서 철저한 율법 교육을 받아서 구약 해석에 남다른 안목을 가진 엘리트였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소개합니다.

이 문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볼로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볼로가 주의 도를 아주 잘 배웠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누가는 그런 아볼로가 이미 예수님을 알았다고 소개합니다. 아볼로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열심히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열심으로’ 라는 뜻은 무언가에 온전히 헌신하다를 의미합니다. 즉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예수에 대한 것들을 열정적으로 말하고 또 자세히 가르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아볼라가 어떻게 예수를 접했는지 소개하지 않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때 아마 애굽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아볼로는 사도들처럼 담대히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런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아볼로가 다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가 알고 가르친 예수에 관한 것들은 복음을 완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죠.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것은 성령 세례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의미이죠. 그가 바울처럼 회당에서 담대히 말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듣고 뭔가 부족한 부분을 느낍니다. 그들이 아볼로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도를 좀 더 정확하게 풀어주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아볼로가 두 사람의 가르침을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학문과 성경에 뛰어났던 유대인 남자 아볼로가 전혀 모르는 여성 브리스길라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죠. 교육 수준이 남달랐던 아볼로는 복음에 활짝 열린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이죠.

얼마후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 하자 에베소 형제들이 격려하고 고린도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에서 아굴라 부부가 주축으로 한 공동체가 아볼로를 고린도 교회로 파송합니다. 누가는 고린도로 건너간 아볼로가 그곳에서 은혜로 구원 얻은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성공적인 고린도 사역의 일면을 제공해줍니다. 아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히 증언합니다. 언변이 출중하고 성경에 능통한 재능은 그의 증언에 설득의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논쟁을 펼쳤지만 아볼로를 당해내지 못했죠. 아볼로는 바울이 부재한 고린도 교회의 리더십을 훌륭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의 아볼로의 영향력은 바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을 하죠.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아볼로는 성도들에게 훌륭한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성도들은 아볼로의 재방문을 바울에게 요청합니다. 그때 아볼로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죠. 바울은 아볼로에게 방문을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아볼로의 방문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죠.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바울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지나 마침내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이 말을 남기고 떠났던 바울이 약 1년 후, 하나님의 뜻에 이끌려 돌아온 것입니다. 누가는 곧바로 바울의 에베소 첫 사역을 소개합니다. 바울이 어떤 제자 그룹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붇자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 제자들이 누구인지?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왜냐하면 누가는 그들을 제자들이라고 묘사했는데, 앞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제자 그룹과 다른 뉘앙스를 띄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학자들 간의 의견이 다양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처음 만났을 때 신자로 알고 그렇게 물었지만, 알고 보니 신자가 아니었고, 마침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죠. 다른 학자들은 아볼로처럼 복음을 접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아볼로보다 훨씬 더 부족했다는 것이죠. 보통은 후자의 경우가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즉 바울이 신자로 알고 물었지만 알고 보니 신자가 아니었고, 마침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요한의 세례만 알았던 아볼로도 비신자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죠.

바울은 그들에게 요한의 회개에 세례를 베풀 때 선포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가 바로 예수라고 선언합니다.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죠. 더욱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재하며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놀라운 현상을 동반합니다.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사건, 사마리아에서의 사건, 고넬료 사건에 이은 또 다른 상징적인 사건이죠.

본문은 성령 임재의 어떤 정형화된 패턴을 말하려는 본문이 아닙니다. 방언이나 예언을 성령 임재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서도 안됩니다. 누가는 참된 제자 공동체의 표징이 성령의 임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 땅의 예수님이 머리되신 모든 교회 공동체는 제자 공동체로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능통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 공동체로 성장해 나아가는데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이라는 것이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성경에 능통할 수 없고,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어렵고, 제자 공동체로 성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이죠.

오늘 하루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성령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하며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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