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19:8-20

◎본문: 행 19:8-20

◎개요

8-10절 회당과 두란노 서원 사역

11-12절 바울이 행한 놀라운 능력

13-16절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

17-20절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과 말씀의 흥왕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8절부터 10절까지는 회당과 두란노 서원을 사역하는 내용이고, 11절에서 12절까지는 바울이 행한 놀라운 능력에 관한 말씀, 그리고 13절부터 16절까지는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 대한 내용이고, 마지막으로 17절부터 20절까지는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과 말씀의 흥왕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본격적은 에베소 사역 역시 회당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잠시 방문한 후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 나라를 담대히 전하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안에서 성취된 새 나라 새 질서를 의미합니다. 누가는 특별히 석 달 동안이라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줍니다. 석 달 동안 끊임없이 변론하고 강론했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은 갈렸습니다. 누가는 부정적 반응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회당 유대인들 중 일부가 마음을 굳게 하며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무리 앞에서 공개적으로 바울과 그가 전한 도를 비방합니다. 유대인들의 거절은 또 다시 바울을 다른 사역으로 밀어내는 동력이 되죠.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에서 두 해 동안 가르칩니다. 서원으로 번역된 단어는 스콜레라고 하는 단어인데, 강연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흥미롭게도 서방 사본은 바울이 제5시에서 제10시,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강론했다고 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아마 가장 더운 그 시간대에 대개 강연장이 비었을 것이고, 주인은 기꺼이 바울에게 빌려주었을 것입니다. 두란노 사역은 대단한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누가는 2년 동안 에베소를 넘어 소아시아 주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말씀을 들었다고 묘사합니다. 두란노 서원은 제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 기독교에 관심 있는 모든 자에게 열려 있는 신학교와 같았습니다. 소아시아의 흩어진 교회들은 두란노 서원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간 사역을 합니다. 누가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 후반기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을 들려줍니다. 11절과 12절은 첫 사건의 배경이 된 바울의 가르침과 이적을 소개합니다. 진리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가르침과 함께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동반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통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고린도 사역처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에베소에서도 역사했죠.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환자들에게 얹기만 해도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갑니다. 바울이 그토록 성령에 충만한 상태였다는 것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누가의 상상력의 결과로 치부해 역사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또 바울의 능력을 부각시켜 영웅시하고 따라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초점은 바울이나 그의 소품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는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에베소 시민들을 돌보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에베소를 지배하는 두 악한 정서인 마술과 아데미라는 우상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마법이 성행했던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의 능력에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에베소의 여느 마법사들이 흉내 내지 못할 만큼의 고급한 마술사로 여겼습니다. 누가는 마술로 돈벌이하는 유대인 퇴마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회당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듣거나 강론을 접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을 때, 예수의 이름을 의지했던 것을 자세히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흉내내어 귀신 들린 자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이렇게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주술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술이 널리 성행하던 에베소의 마법사들에게는 일종의 새로운 마법 기술로 알려져 너도 나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시도하고 애를 썼다는 것이죠. 놀랍게도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에 동참했습니다.

당시 유대 제사장은 소소한 질병을 치유하는 기법들을 익혔습니다. 만일 바울의 능력이 테크닉에 기인한다면 한 번쯤 따라해볼 가치는 충분했죠. 하지만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한 귀신 들린 자의 집을 찾아가 그를 향해 바울과 예수의 이름으로 명했지만, 귀신으로부터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라는 충격적인 반응을 듣습니다. 귀신은 퇴마 기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축귀를 행하는 자의 권세 아래 무릎을 꿇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금하죠. 그때 예수는 그가 제자들을 대적하지 않는다면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축귀는 모방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 능력의 출처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바울도 아닙니다. 아무리 모방해도 불가합니다. 귀신은 축귀하는 자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에 굴복합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은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고 있고, 그것을 귀신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누구냐라는 귀신의 물음은 누구의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 라는 뜻이죠. 충격적이게도 귀신 들린 사람이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장정 일곱을 단숨에 제압합니다. 그들 모두 상처를 입고 벗은 채로 줄행랑치는 수모를 겪게 되죠. 이 사건을 에베로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바울의 능력을 특출한 마술로 치부해온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두려움에 잠기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함부로 모방하려는 시도를 단념하게 합니다. 익숙한 마술로는 경험할 수 없는 신비를 맛본 이들이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실감하고 그 이름을 높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믿고 바울 앞에 나와 고백하며 또 자신들이 행한 주술 행위들을 자백합니다. 이들의 고백과 자백은 새로운 행동을 동반합니다. 그동안 마술에 의지해 살아왔던 자신들의 삶의 무익함을 깨닫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소장해온 마술 책을 모두 가지고 나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사릅니다. 마술사가 마술 책을 불사른다는 것은 생계수단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마술 행위가 얼마나 헛되고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된 것이죠. 그들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바뀌니 삶의 기준과 방식도 바뀐 것이죠. 더는 옛 방식의 지침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새 삶에 두는 것은 무익하고 위험했습니다. 당시 책은 고가여서 부자나 소장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에도 알렉산드리아에 견줄 만한 큰 도서관이 있었는데 도서관은 부유한 개인 소장의 책들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누가는 불에 탄 책 값을 은 오만으로 계산을 합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의 행위로 볼 수 없는 집단적 회심과 행동이죠.

바울의 복음전파와 능력은 에베소의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음을 보여줍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으로 회심했고,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하고 세력을 얻습니다. 에베소에서 주의 말씀이 마법을 눌러 이겼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주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위입니다. 말씀의 능력 또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고 성숙케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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