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행 19:21-41
◎ 제목: 가치관을 반영한 관심
1. 본문 개요
○ 19:21-41 에베소 사역을 마무리하려는 바울과 데메드리오의 소요
2. 관찰
a. 21-22절: 바울의 떠날 계획
b. 23-27절: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바울 고발
c. 28-34절: 혼돈 속의 소요
d. 35-41절: 서기장의 대응
3. 적용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열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향해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욕망과 방향을 해석하고 통제하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21절에 ‘이 일’은 에베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술에 빠져 있던 자들이 책을 다 태워버리는데 그 책의 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일을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복음 전파에 긍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른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그는 그 곳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곳을 떠날 마음을 가집니다. 다시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로마’까지 갈 계획을 세웁니다. 3년 넘게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에서 사역한 바울의 마음이 벌써 로마에 가 있는 형국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사히 구제헌금만 전달하면 제국의 수도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사역의 영광에 취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더욱 필요한 곳, 그리고 그 곳에 복음이 전해지면 더욱 강력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바울에게 안정감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바울은 사역이 기다리는 곳은 어디든지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벌어지는 영적 전투에 매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도 헤아리면서 진로를 결정할 만큼 성령의 전략에 민감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 새벽에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바울의 마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주의 복음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대중앙교회가 앞으로 ‘복음 증거’를 위해, ‘전도’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의 복음의 진전을 위해서 고민하고 그 일을 위해 투자하고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대중앙교회 가운데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22절에 바울은 그렇게 에베소를 떠날 마음을 가지고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신은 아시아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기 위해 얼마동안 더 있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23절을 보니까 적지 않은 소동이 발생합니다. 그 소동의 내용이 24-29절까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소동의 주동자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입니다. 은장색은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데메드리오 아래에 이 은장색 일을 하는 직공과 영업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와 아시아 전역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는 가르침 때문에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일이 천한 취급을 받고 아데미 신전도 무시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사람들을 충동질한 것입니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면서 바울의 일행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메드리오는 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생업 뿐이었습니다. 아데미 신상 모형을 제작하여 돈을 벌던 그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바울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에베소 사람들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지자 반발을 한 겁니다. 그런데 데메드리오의 발언을 잘 보십시오. 언 듯 들어보면 명분이 매우 근사합니다.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그 위엄도 실추될까 염려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우상은 내 탐욕을 만족시켜주거나 내 근원적인 불안을 해소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결코 참다운 경배와 순종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데메드리오를 따르는 군중들이 ‘에베소의 아데미여, 아데미여’라고 정신없이 외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돈이여, 돈이여’를 외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세상의 주장을 잘 드려다 보십시오. 무언가 거창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려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몇몇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지 결코 그 안에 궁극적인 의미에서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온 인류를 향한 유일한 복된 길은 ‘복음’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붙잡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어떤 종류의 정의도 결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 만이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이를 자유케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될 때에, 그 지식,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세상의 어떠한 것에도 우리의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나를 온전케 하고 모든 이를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그 복음에 헌신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0절에 바울은 자신의 친구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군중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제자들이 말립니다. 그리고 31절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도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합니다. 연극장 안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외쳐대지만, 그 가운데 태반은 자신들이 왜 그 곳에 왔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약간의 돌발 상황도 발생합니다. 다름 아닌 ‘알렉산더’의 등장입니다.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무리 가운데 떠밀었고, 그가 무리를 진정시키려고 뭔가 변명을 하려하자, 무리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는 바울과 한 통속인 줄 알고 더욱 소리높여 외치기를 두 시간여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합니다.
35절에 결국 에베소의 서기장이 나섭니다. ‘서기장’은 로마의 관료입니다. 로마 관료는 소요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을 가장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한 후 어떻게든 무리들을 진정키시키려 나섭니다. 그는 35절 하반절에 에베소가 ‘아데미와 제우스가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특별한 도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에베소’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아데미 신전’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것은 타 도시가 부러워할 만한 에베소만의 자랑거리였고, 아데미와 신전의 명성을 천하의 어떠한 것도 꺾을 수 없는 것이라 자부하는 우월감이 에베소 시민들 사이에 의식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서기장은 그런 자부심 있는 시민으로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로마 황제의 눈 밖에 나는 일이 없도록 진정할 것을 권합니다. 데메드리오는 ‘직업의식’으로 무리들을 선동했다면, 서기장은 ‘고급한 시민의식’으로 진정시킵니다. 데메드리오는 선동을 통해 경제적 위기를, 서기장은 진정을 통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몰두하느냐가 삶의 목적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선교의 사명에 자신의 모든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와 서기장은 각각 경제와 정체적 안정에 자신의 모든 가치를 두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아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갈망하는 것을 좇아 사는 존재라는 것을 세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대로 살고, 갈망이 나의 의지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 새벽에 내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선교’에 우리의 가치를 두기 원하십니다. 복음을 갈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더욱 굳게 서기를 기대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