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20:17-27

◎본문: 행 20:17-27

◎개요

17-21절 에베소 사역 회고 및 바울의 진심

22-24절 예루살렘에서 당할 바울의 환난과 태도

25-27절 후회 없었던 최선의 사역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7절부터 21절까지는 에베소 사역 회고 및 바울의 진심에 대한 내용이고, 22절부터 24절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당할 바울의 환난과 태도에 대한 내용이고, 25절부터 27절까지는 최선을 다했던 사역이었고 후회가 없음을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사모라는 도시로 가는 중 에베소를 방문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가는 대신 밀레도에서 잠시 에베소 교회 리더들을 만날 계획을 세웁니다. 바울은 전갈을 보내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들입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까지 거리는 약 45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지체 없이 부름에 응했어도 도착까지 최소한 3일 이상은 걸렸을 만한 거리입니다.

과거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에 어려움을 당할 때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부조를 전달했었죠. 예루살렘 교회에는 초창기부터 사도와 구별된 장로들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장로들을 세워 각 교회를 위탁하고 떠났었죠. 3년의 에베소 사역 동안 바울은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한달음에 달려온 그들에게 바울은 고별설교를 건넵니다. 이 설교는 사도행전에서 전도 대상자들이 아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설교입니다. 누가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향한 목회자 바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일차 목격자로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죠.

18절에 첫날부터 지금까지라고 말하면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변함없이 행했던 모든 일, 곧 과거 속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기억들을 상기시킵니다. 장로들은 바울이 사역 초기에 복음을 전해 믿게 된 자들이며 모든 사역의 신실한 증인들입니다. 바울은 지난 3년의 에베소 사역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그는 겸손과 눈물과 시련으로 주를 섬겼습니다. 이 시험, 시련은 유대인들의 간계들로 말미암아 내가 겪어야 했던 시련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간계 중에는 앞서 등장했던 회당에서 바울을 거절한 것과 마술과 아데미 사건에 연류된 유대인들의 보복성 공격도 포함됩니다.

장로들은 바울이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 겸손과 눈물로 3년을 묵묵히 견디며 하나님을 섬겼던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시련은 바울을 겸손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놀라운 기적과 신비의 화려한 순간의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눈물과 신음으로 채워야만 했습니다. 겸손과 눈물은 고통스러운 정황 속에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종, 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제 작별하며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눈물과 시련으로 섬기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련을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겸손과 눈물이라는 것이죠.

바울은 성도들 앞에서 지난 3년 동안 전심을 다해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이 된다면 공적,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일체의 타협을 거절했습니다. 20절에 거리낌이라는 단어는 움츠러들다, 뒷걸음치다라는 의미인데, 이중 부정과 함께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20절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너희에게 선포하고 전하는 일에 움츠러들지 않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처럼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전한 내용이 곧바로 이어져 나옵니다. 바울은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회개와 믿음을 담대히 증언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죠. 유대인들은 불순종과 불신으로부터, 그리고 헬라인은 우상으로부터 돌이켜야 했습니다.

믿음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복음의 핵심이죠.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처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물러섬 없이 담대히 복음을 가르치고 전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지금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매여라는 동사는 결박하다, 구류하다를 뜻합니다. 과거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결박해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향했었죠. 바울의 계획대로라면 성도들을 포로로 잡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께 도리어 잡히게 되죠. 이후로 바울의 생애는 철저히 예수님께 붙들린, 결박된 수동적 삶이 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은 예수님의 영, 성령에 결박되어 예루살렘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신적 당위성에 따른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한 이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바울은 마치 죄수처럼 결박된 채로 예루살렘을 향하는 중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가이사랴에 도착하면 선지자 아가보를 통한 예언으로 좀 더 구체화 됩니다.

바울의 결연한 의지와 태도가 뒤를 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매임과 예루살렘 행을 과거 다메섹에서 예수님께서 주셨던 위대한 사명,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달음질로 이해합니다. 예수님께 붙들린 자의 생명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 때 최고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일보다 바울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이죠. 상황과 조건은 바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유일한 관심은 모든 상황과 조건이 복음 증언의 기회가 된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태도와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마음과 태도는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내진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다른 것보다 더 사명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지요. 때로는 나태하거나 때로는 게으르거나 태만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우리가 이 땅에 보내진 목적에 힘을 쏟고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고 신실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