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22:12-29

◎본문: 행 22:12-29

◎개요

12-23절 바울의 첫 변론

24-29절 로마 영내로 끌려간 바울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부터 23절까지는 바울의 첫 변론에 관한 내용이고, 24절부터 29절까지의 말씀은 로마 영내로 끌려간 바울에 대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회심 사건 나머지 부분이 이어지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영광의 광채로 일시적 실명 상태가 된 바울은 일행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바울이 있는 곳에 아나니아가 찾아오죠. 첫 번째 진술이 나오는 사도행전 9장에서는 아니나아가 기도 중에 경험한 신비로운 환상이 상세하게 소개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아나니아의 환상을 그에 대한 평판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곧바로 언급하려는 바울의 성전 환상 때문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율법에 철저히 순종하는 경건한 유대인이며 그 지역 모든 유대인이 칭찬했던 신뢰할 만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가 와서 바울의 눈을 뜨게 해주었고, 주님께 받은 계시의 말씀을 전달해줍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누가는 아나니아가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으로 전하지만,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계시를 주신 분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며 단숨에 청중 유대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계시는 다메섹 도상의 부르심과 이후 감당할 사역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핍박에 헌신한 바울에게 열심의 방향을 재설정해주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무엇보다 그가 박해한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의 생생한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바울은 지금껏 예수님과 그 추종자들을 율법과 성전을 모독한 신성모독 죄인으로 간주하고 핍박에 헌신해왔는데, 하나님은 바울에게 그 예수님을 그 의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은 실명한 채로 의인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그 앞에 나타나신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곧바로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담긴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바울을 택하신 목적은 그가 박해하던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앞에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소명과 사명에 있어서 예루살렘 사도들과 그 방향을 같이 합니다. 그러니 변론하는 지금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중입니다. 다메섹 사건은 죄 사함의 세례로 매듭지어집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일어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씻으라고 말하죠. 바울은 단순히 과거 특별했던 사적 경험을 간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그들이 돌이켜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얻도록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론의 후반부는 또 다른 계시 이야기로 채워나갑니다.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무대가 전환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환상이죠. 지금 바울은 율법과 성전 모독으로 성전에서 무리에게 붙잡혀 여기까지 이른 상황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성전 환상을 꺼낸 것입니다. 바울 개인에게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지만, 듣는 청중에게는 또 다른 신정 모독적 발언으로 다가왔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의 일입니다. 회심 후 첫 예루살렘 방문 때의 일이라고 보는데, 그때 바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출입하며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변론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살기등등한 분노였죠. 성전 환상은 그 어간에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에 주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이 증언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님께 떠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과거 자신이 회당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 때리고 가두었으며, 더욱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적극 동조하며 그를 죽인 사람들의 옷을 맡아 증인을 자처했던 자라는 사실을 예루살렘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답변으로 동문서답과도 같은 대답이지만, 사실은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답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핍박했던 자신이 이제 완전히 돌이켜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되었으니, 내심 사람들이 그의 증언에 관심을 갖고 믿어주리라 기대한 것이죠.

동족 유대인들의 마음을 예수께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주님은 떠나가라 말씀하시며 그를 이방인에게 보내겠다고 하시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증해주신 말씀입니다. 무리는 여기까지 듣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특별히 성전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무리의 격노에 기름을 부어버렸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신탁이 흘러나오는 가장 거룩한 계시의 장소입니다.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계시가 바울 개인에게 임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못마땅했습니다. 더욱 분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다름 아닌 그 계시의 주체가 예수님이었다는데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죽였던 죄인 예수가 거룩한 성전에서 계시를 준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 자신들에게는 말문이 막히는 일이고, 성전과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신성모독인 것이죠.

무리가 광분하며 이구동성으로 바울을 결코 살려두어서는 안 될 자라며 죽여야 한다고 외칩니다. 무리는 큰 소리로 외치며 옷을 벗어 던지고 먼지를 일으킵니다. 이에 천부장은 발언권을 거두고 바울을 무리로부터 분리합니다. 아람어를 몰랐던 천부장은 이 신비로운 사내, 바울이 일으킨 소요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그를 영내로 끌고 가 채찍질과 함께 심문하라고 명령합니다. 자그마한 소요라도 정확한 진상 조사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천부장의 임무입니다. 혹시 몰르 더 큰 소요와 반란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죠. 군인들이 바울에게 채찍을 가하기 위해 가죽 줄에 매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장소가 과거 예수님의 심문 장소와 동일했을 것으로 가정하기도 합니다. 채찍이 가해지기 직전, 바울이 곁에서 심문 과정을 주도하던 백부장에게 말을 건넵니다. 로마 시민인 자신을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백부장이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천부장에게 즉시 보고합니다. 그리고 천부장이 급히 달려오죠.

바울에게 확인차 시민권자인지 재차 묻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자신은 돈으로 시민권을 얻었다고 자백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나면서부터 시민권자였다고 말하죠. 천부장은 이 말을 듣고 최소한 부모님이나 그 이상 조부 대에서 로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별한 집안일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대한 사안은 로마 시민권자를 죄도 묻지 않고 물리력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포박한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이죠. 이것은 명백한 범죄였기 때문에 천부장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합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시민권자는 재판 전에 옥에 가두는 것도 금했습니다. 바울의 경우 실수한 천부장이 더 나은 대우를 베풀었겠지만,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바울은 하룻밤을 요새 어딘가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겠죠.

이렇듯 바울은 사람들의 소요를 겁내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에 있어서,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죽음의 위기까지 놓인다 하더라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했고, 담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역시도 이러한 것에 대한 경험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불이익도 당하고 욕을 하거나 해코지하는 사람들도 만나본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전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시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걸어가고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팔복에 이렇게 말씀하죠.

마태복음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 길을 끝까지 견디고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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