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행 27:21-44

◎본문: 행 27:21-44

◎개요

21-26절 바울의 선상 설교

27-44절 풍랑에 부서진 배 그러나

◎본문연구

오늘은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기도하실 때, 은혜와 성령충만한 금요기도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1절부터 26절까지는 바울의 선상 설교의 내용이고, 27절부터 44절까지는 풍랑에 부서진 배 그러나 백부장을 통한 구원의 내용입니다.

바람이 몰고 온 죽음의 그림자는 배를 완전히 감싸버렸습니다. 언제 죽음에 삼켜져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출렁이는 배 위에서 열흘 넘도록 먹지 못한 사람들의 기력은 바닥이 났습니다. 살 소망까지 바다에 던진 채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 바울이 발언합니다. 먼저 선장과 사공들과 백부장에게 미항에서 자신의 경고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이런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듣지 않았지만, 이제는 본인 말을 믿고 경청해주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두려움에 얼어붙은 사람들에게 안심하라, 결코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고, 그저 배만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뱃사람 중 대부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이처럼 죽음에 삼켜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믿으면 희망이고 거절하면 절망이죠. 바울은 어떻게 그런 메시지를 담대히 선언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 자신을 따로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에 두려웠겠지만 생명 보존에 일절 의심은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삼백여 선원 모두가 안전할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어젯밤 하나님의 사자가 곁에 서서 놀라운 신탁을 들려주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이죠. 배 안에 있는 사람들 태반은 하나님을 몰랐고, 특히 뱃사람들은 바다의 신이라고 하는 포세이돈을 신봉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 전해주신 약속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바울이 어제 경험한 신적 현현은 2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붙잡혀 매 맞고 천부장의 개입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해주신 이래 처음입니다.

신탁은 바울과 나머지 배 안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생명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황제 가이사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풍랑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 다음 배 안의 무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생명은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속했고, 무리는 바울에게 속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듯 선원들은 바울에게서 생명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원 풍랑으로부터 생명을 보전할 것입니다. 그 배에 바울이 있어 모두 살 것입니다. 배에 대한 신탁은 따로 없었고 손상은 불가피했습니다. 손상은 오직 배뿐이리라고 말한 것은 파선된다 하더라도 생명은 안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리에게 안심하라고 권면하고 스스로 그 신탁과 신탁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에는 그러니 당신들도 내 말을 믿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믿으시오라는 수사가 깔려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바울은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로 하나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한 섬에 이를 것입니다. 수많은 섬 중에 한 섬이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한 섬이죠. 그런데 미항을 떠난 지 2주째 되던 날 밤이었습니다. 여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채 칠흑같은 밤바다를 이리저리 항해하던 중 자정쯤 되자 사공들이 먼저 배가 육지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누가는 그 해역을 아드리아라고 기록합니다. 사공이 계속해서 수심을 재더니 스무 길에서 열다섯 길로 점차 줄어듦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뭍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이죠. 하지만 동시에 덩치 큰 배가 쉽게 부딪칠 수 있는 암초에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무 정보 없이 초행길을 항해하는 것은 안내 없이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같죠. 어둠 속에서 더는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선미의 네 닻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공들이 선수 쪽으로 가서 또 다른 닻을 내리는 시늉을 하더니 닻이 아니라 거룻배, 지금으로 말하면 구명보트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 장면을 사도 바울이 포착합니다. 이에 바울은 곧장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가서 저 사공들이 배에 있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목숨은 잃게 될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즉시 달려가 사공들이 올라타기 전에 거룻줄을 끊어버립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도발은 흔한 일이죠. 한바탕 소동 이후 날이 서서히 밝아옵니다. 바울은 기진한 선원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합니다. 대부분 2주 내내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습니다. 속죄일부터 금식하던 사람들은 더욱 건강이 심각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음식을 권하며 살려면 먹어야 한다, 그래야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떡을 가져오더니 다 보는 앞에서 들어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모두가 안심하고 먹기 시작합니다. 누가는 그 수가 총 276명이라고 보고합니다. 죽음의 바다 위에서 베풀어진 생명의 잔치인 것이죠. 이 장면은 과거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오병이어 사건을 떠오르게 하죠. 떡을 가져다가 축사하고 떼어주는 일련의 행위가 서로 평행하기 때문이죠. 정황상 평범한 식사는 아니지만 바울의 행동은 무리에게 하나님이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처음에는 뱃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외면하고 거절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경청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오랜만에 배불리 먹습니다. 그러고는 배에 실린 밀을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합니다. 암초 사이를 지나기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었죠. 날이 밝아서 어디까지 떠밀려 왔는지 가늠조차 안됐지만 멀찍이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항만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곧바로 접안이 가능할지 베테랑 선장과 사공들이 머리를 맞댑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하죠. 그런데 두 물살이 합쳐지는 지점 아래 거대한 모래톱에 선수 부분이 박히고 맙니다. 선미 부분은 거센 물살이 쉼 없이 때리고 있죠. 더 이상의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배가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배 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군인들이 백부장에게 말해 죄수들이 도망갈까봐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죠. 그 죄수에는 바울도 포함되죠. 하지만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살리기 위해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누구든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탈출해서 육지로 가라고 합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 모두 사력을 다해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칩니다. 바울이 베푼 마지막 식사가 아니었다면 체력이 안되어 이마저도 할 수 없었겠죠.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하는데 배 없이 276명 전원이 생존합니다.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비록 배는 잃었지만 선원의 목숨은 단 하나도 잃지 않았던 것이죠.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때문에 그들의 주변인이 복을 받게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에 백부장이 바로 그러했죠. 바울을 보면서 바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던 것이죠. 바울을 통해서 바울 때문에 배에 있던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죠.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각자 위치에 보내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야 하는 것이죠. 넘쳐 흘러서 우리 주변뿐만 아니라 온 동네와 그 지역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