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27:12-22

◎본문: 렘 27:12-22

◎개요

12-15절 예레미야의 말씀 선포

16-22절 구원 예언을 듣지 말라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2절부터 15절까지는 예레미야의 말씀 선포에 대한 내용이고, 16절부터 22절까지는 구원 예언을 듣지 말라는 경고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모든 말씀, 곧 27장 전반부에 언급된 명령을 시드기야에게 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것을 요약하며 다시 한번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섬기소서, 사시리라 이 두 표현은 모두 명령형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상당히 긴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를 섬기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그전의 메시지와 구별되죠. 예레미야 선지자 이전 선지자인 이사야는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패권 국가인 앗수르에 대해서, 앗수르가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했습니다. 덧붙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게 무릎 꿇지 않으려는 행위에 대해 13절에 어찌하여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은 8절과도 비슷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두 차례나 바벨론을 섬겨야 함을 반복할 정도로 당시 지중해 동편의 정세는 심각했습니다. 바벨론은 자신을 배반한 종속 국가를 결코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는 애굽에 의존하려 했지만, 애굽 역시 바벨론의 상대가 되지 못했죠.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드기야에게 선포하는 칼, 기근, 전염병은 주전 586년에 발생할 이스라엘 멸망을 가리킵니다. 본문 14절에서 15절 말씀은 시드기야에게 허황된 기대를 심어주는 예언자를 언급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하는 자들이죠. 게다가 여기에는 예언자들이라는 복수형이 사용되어서, 그것을 말하는 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을 거짓 예언자로 규정합니다.

그들을 거짓 예언자로 선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들이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고 미래에 밝혀지겠지만, 그들의 선포대로 되지 않을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죠. 둘째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해 여호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바벨론의 손에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뜻과 무관하게 예언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예언자에 대해 심판을 선언합니다. 여호와는 거짓 예언자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15절에서 말씀합니다.

10절 말씀과 유사한데, 10절 말씀에 나오는 너희가 멸망하리라는 말씀이 남유다 백성을 향한 선포라면 15절에는 거짓 예언자가 포함된 선언인 것이죠. 15절은 거짓 예언자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예언합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것에 대한 진짜와 가짜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의 선포는 당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한 메시지였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의 선포는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은 긴장 관계에 있었습니다. 구원 예언의 진위 여부는 그 선포대로 이루어지는지 여부가 결정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대 사람들은 거짓 예언에 귀를 기울였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거부했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에 대한 거부는 여호와에 대한 거부와 일치합니다.

16절은 예레미야의 선포를 듣는 집단으로 제사장과 모든 백성을 언급합니다. 제사장은 26장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 고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본문은 제사장에게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라는 단어를 동사보다 앞에 배열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는 포로로 끌려간 자의 귀환을 언급하는 대신 여호와의 성전 기구의 귀환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전 기구의 귀환이 포로로 끌려간 자들의 귀환을 비유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와 유사한 것을 포로기 이후 문헌에서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에게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는 문장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자들, 즉 주전 597년 포로 사건을 전제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성전 기물을 비유로 사용하여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속히 귀환할 것이라 선언하지만, 제사장들과 백성은 그들의 거짓 선포에 귀 기울여서는 안되는 것이죠. 포로들이 귀환할 것이라는 선포는 바벨론의 멸망을 전제합니다. 즉,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포로 귀환은 바벨론이 멸망할 것에 대한 선언인 것이죠. 본문 14절에서 16절 말씀에는 반복하여 거짓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들은 구원 예언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원 예언자와 달리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고 명령하죠. 이것은 살리라라는 표현에서 보여주듯 생명과 연결되었기에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는 명령은 중요합니다. 섬기다와 살다의 연결을 보여주지만, 섬기는 대상은 여호와가 아니라 이방의 왕, 바벨론의 왕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않으면 예루살렘이 황무지, 즉 폐허가 된다고 말합니다.

황무지는 13절에 칼이라는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황무지가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칼로 심판하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이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자라는 것은 성전에 대한 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참된 예언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진 자라면, 여호와의 성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예언자들의 여호와의 성전이 약탈당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본문 19절 이하는 성전에 남아있는 기구에 대한 선포입니다. 20절은 여고니야, 즉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간 주전 597년에 성전 기물 일부도 옮겨갔지만 일부는 남겨졌음을 암시하죠.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기구마저 다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다시 되돌려 오리라는 예언도 합니다. 여기에는 귀환을 가리키는 동사가 사용되어 포로기 이후에 있을 귀환 사건을 암시하고 있죠. 본문은 그 시점을 내가 돌보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돌보다는 동사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라는 요셉의 발언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즉,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후손을 돌보시는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불합리하고 당장에 이해가 되지 않아서 불편하고 부담되는 마음을 가졌던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함으로 지나고 나면 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설령 지금까지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순종했음을 고백으로 받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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