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30:12-24

◎본문: 렘 30:12-24

◎개요

12-17절 상처 치유

18-24절 언약 체결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부터 17절까지는 상처 치유에 관한 말씀이고, 18절부터 24절까지는 언약 체결에 관한 말씀입니다.

12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가장 먼저 네 상처는 고칠 수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상처라는 단어는 부수다, 꺾다를 의미합니다. 이 어근의 동사는 예레미야의 멍에를 꺾는 하나냐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멍에를 꺾으며 구원을 말했지만, 그의 거짓 예언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상처를 깊게 만들 뿐이었죠. 그리고 12절에 부상이라는 단어는 때리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한 단어로, 맞아서 생긴 부상의 의미합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이스라엘에는 재판관이 없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할 것이므로 이스라엘의 권리를 지켜줄 자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생각하면, 부당한 재판관은 이익을 얻고자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지 않게 판결하기도 했었죠.

즉, 재판관이 없다는 말은 불공정한 재판관이 사라졌음을 가리키지만, 이제는 그나마 존재하던 재판관도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어서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여기에서 상처라는 단어는 12절 마지막에 중하다와 유사한 단어이고, 약으로 번역된 단어는 치료하다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떤 방법으로도 이스라엘을 치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동일한 동사가 17절에서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고쳐주리라고 선언하죠. 14절에 너를 사랑하던 자를 동사보다 앞에 배열하여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너는 유다를 가리키고, 사랑하던 자는 유다와 동맹을 맺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다가 강성하고 독립된 국가를 이루었을 때 이방나라들은 유다를 찾았지만, 유다가 멸망한 이후에 동맹국들은 유다를 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동맹국이 유다를 망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은 그에 대해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구는 15절에서 한번 더 반복됩니다. 게다가 여기에 나오는 상처와 고통이 심하도다는 12절에서 사용된 용어의 반복입니다. 즉, 저자는 15절에서 앞의 용어들을 반복함으로써 이러한 상처와 고통이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죠. 16절은 동일한 어근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너를 먹는 자는 잡아먹힐과 동일한 어근이며, 너를 탈취한 자는 탈취당할 것과 동일한 어근입니다. 마지막으로 너를 노략질한 자는 노략물이 되다와 동일한 어근이죠.

15절에서 먹는 자, 탈취한 자, 노략질한 자는 모두 분사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이스라엘을 유린하는 자들이 결코 하나가 아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패권국가인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때로 동맹을 맺었던 나라들조차 이스라엘을 유린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죠. 이러한 묘사는 이스라엘이 패권국가와의 동맹국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절에서 또 눈여겨 볼 것은 동사의 형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먹은 자가 먹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탈취한 자가 탈취물이 될 것이며, 노략질한 자가 노략물이 될 것을 선언하죠. 약탈자는 머지않아 약탈물이 될 것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인과응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간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죠. 17절은 구원의 말을 보여줍니다. 개역개정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이렇게 시작하지만, 히브리 성서는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주리라 이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여기에서 고치다라는 단어는 약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어근이죠. 이스라엘의 상처를 치료할 약은 여호와이므로 이스라엘이 환부를 치료할 약을 이방 나라에서 구하는 것은 헛될 뿐이죠.

본문은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서술하는데, 돋아나다는 없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상처를 입고 치유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했고,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치유하는 유일한 주체로서, 여호와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8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는 방식을 말해줍니다. 18절에 사용되는 용어로, 돌아가다, 포로들, 살다라는 단어들은 슈브라는 단어의 분사형이거나 파생된 단어입니다. 환언하자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대단히 유사한 자음을 활용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할 것임을 밝혀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추가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기술합니다. 이 표현은 17절에 새 살이라는 단어와 매우 유사합니다. 사랑한다는 단어에는 연민을 느끼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상처입은 이스라엘에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은 여호와의 긍휼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22절에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은 전형적인 언약 공식입니다. 여호와께서 포로로 끌려간 자들과 그들의 후손을 귀환시키고 그들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모습과 겹치죠.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과거 세대와 연속성이 있지만, 새로운 언약을 맺는 백성이 된다는 점에서 과거 세대와 단절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죠.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꼭 믿어져서 조금도 구원의 확신이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서 있어 믿음의 본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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