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렘 31:1-9


◎ 본문: 렘 31:1-9
◎ 제목: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1. 본문 개요
    a. 31:1-6 에브라임에 대한 구원 선포
    b. 31:7-9 남은 자의 구원


2. 관찰
    a. 1절: 언약 공식
    b. 2-5절: 첫 번째, 두 번째 출애굽
    c. 6절: 시온으로 순례
    d. 7절: 찬양 요청
    e. 8-9절: 여호와의 구원- 인도, 귀환

3. 적용
    나라는 망하고 자신은 적국의 포로로 끌려간다면, 그 삶은 매우 고단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현실은 암울하며 작은 기쁨도 발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를 향하여 너희들 앞에 바로 그 절망뿐인 ‘유배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단지 유배의 고단한 삶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너희들이 그 유배의 상황에서 다시 회복되어 돌아온다 할지라도 회복될 수 없을 것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십니다.

    과연 그늘진 인생 가운데 즐거움과 평안을 되찾아 원초적인 기쁨을 무엇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땅의 것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것으로, 위로부터 오는 소망의 약속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위해 어떤 은혜의 말씀을 주실까요?

    1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라는 표현으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모든 종족’이라는 표현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함께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지파 전체를 가리킨다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 이스라엘은 지금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 시점보다 약 100년 전에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다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고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십니다. 즉 ‘광야’를 ‘은혜’를 경험하는 장소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특별히 ‘칼에서 벗어난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칼’을 피해서 ‘광야’로 나아갔다면, 광야는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겠지만, 여호와께서 그 광야를 은혜의 장소로 바꾸셨다는 말입니다.

    지금 1-2절은 언젠가 ‘바벨론’으로부터 회복되어 돌아오게 될 이스라엘을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를 필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사건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 첫 번째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유배당하여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을 ‘두 번째 출애굽’의 은혜로 인도하실 것임을 약속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인하여 파기되었던 언약 관계가 다시 회복 될 것임을 예레미야를 통해 선언하십니다. 출애굽 때에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종살이하는 유배민들과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옛적에도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인자함으로 이끄셨던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회복으로 이끌어 다시 세우기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파기된 언약, 그로 인해 소망의 땅 에덴에서 쫓겨났던 아담과 하와를 ‘가죽옷’ 입히셔서 소망을 잃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로 인하여 방황하는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 출애굽’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그 포기하지 않는 사랑’만이 저와 여러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의 상태에서 자유케 되는 날에 대해 4-6절까지 생생하게 묘사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세워지고 사람들은 소고를 들고 나와 흥겹게 춤추는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산마다 다시 포도원이 만들어지고 나무를 심은 자는 땅의 결실을 빼앗기지 않고 그 열매를 즐긴답니다. 백성들은 다시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아 자유와 축제의 삶을 누립니다. 6절에 에브라임이 등장하는데, 에브라임은 북 왕국의 중심 지파로서 그들이 시온을 찾아 예배함으로 분열되었던 왕조가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 됨을 회복할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주의 백성을 향하여 이런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친 백성에게 꿈같은 미래를 열어 보여 소망의 심을 갖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약속해 주시는 ‘미래’는 헛된 꿈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미래는 현실이고, 곧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배되어 바벨론에 끌려가는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견디고 버틸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금 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온전한 회복, 완전한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함이 옳을까요? 여러 민족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하고 전파하며 찬양하며 남은 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미래에 속한 것이지만 결코 취소될 수 없는 결정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이미 성취가 된 듯 찬미로 노래할 것을 하나님은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명령하고 계십니다. 8절에 하나님께서는 ‘북쪽 땅에서 인도하여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유배민을 불러 모아 가나안까지의 멀고 험한 길을 인도하실 것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어떤 인도하심입니까? 안전한 인도하심입니다. 보지 못하는 자도, 보행이 힘든 자도,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도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셔서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찬미하게 하실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보이십니다. 분명 나라가 망하여 포로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잠깐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릴 은총은 평생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이스라엘은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그러진 관계를 복원하시고는 사랑과 인자를 보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그 하나님을 누리고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혹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낙심치 않고 붙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언약을 파기해 버린 이스라엘도 놓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제자리에 돌려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물며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앙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기도하기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을 그냥 놔두시겠습니까? 그분의 사랑이 결국 우리를 사로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실 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곧 나의 현실이며 곧 도래할 미래임을 굳게 붙잡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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