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32:36-44

◎본문: 렘 32:36-44

◎개요

36-42절 구원 약속

43-44절 유다 재건: 밭 매매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36절부터 42절까지는 구원을 약속하는 내용이고, 43절부터 44절까지는 유다의 재건에 대한 말씀, 특별히 밭을 매매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와 여호와의 응답이 나온 이후에 본문은 다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어지는 예언이 앞의 내용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36절을 시작하는 그러나라는 접속어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러나 이제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36절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24절과 동일합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통해 36절 이하가 예루살렘에 대한 것임을 저자는 명확하게 선언하는 것이죠. 37절은 보라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라고 시작하는데, 여호와의 구원 사건을 묘사합니다. 이어서 모든 지방이라는 단어를 꾸며주는 문장이 나오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모으는 땅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곳입니다.

여기에서 쫓아 보내었다는 단어는 완료형인데, 마치 이미 발생한 사건인 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이어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노여움, 분함과 큰 분노로 이스라엘을 쫓아냈음을 37절에서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분노를 표현하는 용어를 세 개나 연속하여 언급하며 분노의 크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모으시는 이유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주제는 31장에서 빈번하게 나오는데, 예레미야는 그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덧붙여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살게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것만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거주하며, 그곳을 재건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38절에 기록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 문장은 언약 공식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여 살게 할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죠. 예레미야는 추가로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데, 여호와를 주어로 하는 인칭대명사를 추가로 언급함으로써 다른 이방신이 아닌 바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은 외적인 부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줄 것이라 말하는데, 이것은 한 마음과 새 영을 말하는 에스겔과 유사하며, 새 언약과 견줄 수 있는 것이죠. 38절은 40절과 연결됩니다. 40절은 내가 언약을 세우다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38절에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가 풀이되어 나오지만, 40절에는 언약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실 언약은 영원한 언약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이전의 언약과 구별되는 것이죠. 영원한 언약은 이전에도 나오지만 32장의 영원한 언약은 포로 귀환 이후에 새로운 백성과 맺을 언약을 가리킵니다. 여호와는 그들과 언약을 세울 뿐 아니라, 그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시죠. 떠나다라는 단어는 앞서 37절에서 돌아가다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이는 내가 돌아서지 아니하리라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는 목적은 복을 주기 위하여입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39절부터 42절까지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복을 주는 목적은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시는 것이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려가도록 하여 심판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31절과 40절에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마음에 경외함을 둘 것입니다. 본문에는 경외함이라는 단어가 동사보다 앞에 배열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여호와 경외를 알게 하기 위해 한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경외함을 그들 마음에 직접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41절에서 여호와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겠다고 선언하시죠. 이어서 예레미야는 심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이 땅에 돌아와서 살게 되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 동사는 예레미야 1장 10절에서 새롭게 건설하고 심게 하다를 서술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죠. 따라서 41절은 심판 이후에 있을 이스라엘 재건을 묘사합니다. 분명히라는 단어는 신실하게를 뜻하는 단어이며,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의 번역입니다. 신명기는 종종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는데, 이 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로 사용된 신실하게를 뜻하죠.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사랑하지 못했고 그 결과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실하게 행하시는 여호와를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랑하여 귀환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실함이 이스라엘을 귀환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이어서 본문은 여호와께서 모든 재앙 뿐 아니라, 모든 복을 내리실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허락한이라는 단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한 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덧붙여 본문에는 독립된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여 복을 주는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을 주시는 주체가 여호와이시며,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잡혀가게 하신 분도 여호와이시며, 그들을 돌아오게 하신 분도 여호와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고통 속에서 회개하고 부르짖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가 모두 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귀환하게 하시죠.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맺으신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가 여호와를 움직이게 하시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 역시도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실하심,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미리 택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신실하심을 지키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호와의 신실하심에 감사하며, 그 신실하심을 깊이 깨달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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