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34:1-7

◎본문: 렘 34:1-7

◎개요

1절 도입부

2-5절 여호와 메시지

6-7절 예레미야의 명령 이행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은 도입부에 해당하고 2절부터 5절까지는 여호와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6절부터 7절까지는 예레미야의 명령 이행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희가 읽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지만, 본문은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에게 새로운 말씀이 임했음을 보여주는데, 34장은 33장과 전혀 다른 뉘앙스를 묘사합니다. 1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성읍을 공격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주전 6세기 상황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저자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뿐 아니라 그의 세력 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대 바벨론이 주전 612년 이후에 지중해 동편의 패권을 장악했고, 많은 나라들이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공격한다는 사실은 유다 주변에 있는 국가들도 바벨론을 도와 공격하는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고,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시드기야에게 전합니다.

2절에는 메신저 공식이 2회나 나옵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첫 번째 메시지는 가라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부정사 명령의 의미로 해석되는 절대형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예레미야의 상황이 33장과 구별됨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33장 1절에는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를 언급하며 예레미야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가라 라는 명령은 예레미야가 갇히지 않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메시지는 예레미야를 향한 말씀인 것이죠.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임한 두 번째 메신저 공식은 예언자를 향한 말씀이며, 이는 동시에 유다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위기에 빠진 시드기야에게 전해야 할 말씀은 이 성을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기겠다는 선언입니다.

즉, 여호와의 말씀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인 것이죠. 게다가 이 심판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다라난 표현에서 이미지화됩니다. 예레미야 36장은 시드기야 이전에 통치한 여호야김이 여호와의 말씀을 불사르는 사건을 묘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예루살렘 심판이 여호와의 말씀을 불사른 행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성이 불로 심판을 받는 모습을 소돔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예루살렘이 소돔과 다름이 없다고 23장에서 말합니다. 본문 3절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벗어나지 못한다 라고 서술하는데, 주어를 강조하므로, 본문은 결코 너는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동의어 반복을 통해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강조합니다. 이로써 저자는 여호와의 심판을 반복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은 그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저자가 예루살렘의 운명을 서술하는데 사용한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수동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데, 이것은 예루살렘의 운명이 다른 나라에 의해 좌우될 것임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죠.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과 눈과 눈을 마주하며 볼 것이며, 입과 입을 마주하며 말할 것이라고 3절은 말씀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라는 표현은 친밀도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예레미야는 친밀함이 아니라 심판의 상황에서 바벨론 왕 앞으로 끌려갈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과 얼굴을 마주한 이후에 나오는 바벨론으로 가다는 뜻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 따르면 시드기야는 아들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고, 눈이 뽑히고 결박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본문 4절에서는 그러나로 시작하며, 쉐마 즉, 들으라는 명령을 한 후에 다시 메신저 공식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드기야에게 전한 말씀은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반복해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예루살렘이 심판당할 것이라 말하지만, 시드기야에 대해서는 칼에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합니다. 그것에 상응하게 저자는 시드기야에 대해 평안히 죽을 것이라고 5절에 말합니다. 5절에 평안히라는 단어는 동사 앞에 배열되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와 신명기 역사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시드기야의 마지막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감으로 인해 바벨론에는 유다의 두 왕, 곧 여호야긴과 시드기야가 포로로 끌려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유다에는 반바벨론 움직임이 있었고, 그로 인해 바벨론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사람은 시드기야가 아니라, 여호야긴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주전 562년 사건을 서술하는 본문에서 시드기야가 아니라 여호야긴이 유다 왕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평안히 죽을 것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 죽을 것을 의미할 뿐이며, 오히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혔을 뿐 아니라, 바벨론에서 유다 왕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치욕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학자는 여기에서 평안히라는 말을 비꼬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본문 5절이 긍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하므로 분향하다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2절 말씀에서 불사르다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렇기에 5절에서 중의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6절부터 7절까지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가 예언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나아갔다는 것은 예레미야는 갇히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후에 7절은 바벨론의 진격을 묘사합니다. 바벨론이 유다로 진격하며 파죽지세로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서술하죠. 그뿐 아니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을 쳤으며, 그곳의 지명을 라기스와 아세가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세가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점이고, 라기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요새화된 이 두 곳이 점령되었음을 묘사하며, 예루살렘 남부 지역이 대부분 바벨론의 수중에 들어갔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벨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요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주님과 반역하는 백성 간의 싸움이고, 바벨론은 도구일 뿐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에게 반역한 것을 늦게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바벨론이라는 도구를 들어서 사용하시어, 백성들이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어 회개해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경고를 하셨던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말씀을 통해 묵상하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모습들과 습관들 혹은 그런 잔재들을 조금씩 제거해나가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더 성장시키시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를 사용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