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렘 43:1-13
◎개요
1-7절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
8-13절 애굽에서 임한 여호와의 말씀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속히 응답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7절까지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에 관한 말씀이고, 8절부터 13절까지는 애굽에서 임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에는 다바르, 말씀이라는 뜻의 단어가 3회나 기록되어 강조되었습니다. 1절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다 라는 점을 언급하여 유다의 남은 자들의 요청에 따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고 보도합니다. 2절은 예언자의 신탁에 대한 백성의 반응을 묘사합니다.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 이들을 서술하죠.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거짓으로 규정합니다. 개역개정은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 번역하며 말하다를 부정하는 듯하지만, 원문은 너를 보내지 않았다로 표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와가 예언자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며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죠.
2절 하반절에서 그들은 너희는 애굽에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것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엄격한 금지 명령입니다. 저자는 살려고라고 말하죠. 동일한 표현이 예레미야 42장 15절과 17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그들은 나그네 또는 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3절은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합니다. 네리야의 아들 바룩은 예레미야가 아나돗 지역을 땅을 매매하며 그 증서를 건넸던 인물이며, 예레미야가 명령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록한 사람, 대필자입니다. 사람들은 그 바룩이 예레미야를 부추긴다고 3절에 말하는데, 이는 꾀다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의 시각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바룩의 꼬임에 넘어간 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자신들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 죽음으로 몰고 가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4절은 다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과 모든 백성을 언급하며 그들이 유다 땅에 살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았다고 서술합니다. 이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선포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요하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로 규정하는 반면에, 저자는 예레미야를 참 예언자로 묘사합니다. 5절은 이야기 형식을 취합니다. 6절 끝에서 나오는 거느리고라는 용어로 문장이 시작하는데, 이 단어는 데려가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 쫓겨났던 나라에서 유다 땅에서 살려고 돌아온 자들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행동을 시작합니다. 예레미야서 41장에 따르면 저자는 그들이 애굽으로 가려고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라, 이미 결심을 굳히고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뜻을 물은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결심에 여호와의 재가를 기대한 듯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기대와 다르자,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예언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밥룩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향합니다. 6절은 요하난이 이끌고 가는 사람들의 목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유다 백성을 억지로 끌고 암몬으로 갈 때 요하난은 이스마엘로부터 그들을 구했지만, 이제는 요하난이 백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려 합니다.
따라서 요하난 일행의 행위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아 암몬으로 떠나려던 이스마엘의 행위와 비교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만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예언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끌고 갑니다. 무엇보다 예레미야는 그다랴의 개혁을 지지했던 인물이었고, 요하난의 신탁 요청에 애굽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선포했습니다. 즉 요하난이 예레미야를 애굽으로 데려갔다는 기록은 예언자가 끌려갔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히브리 성서와 개역개정 번역에 이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 성서에 따르면, 애굽으로 내려간 이유로 그들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그들이 도달한 지역으로 다바네스가 언급되었습니다. 다바네스는 시나이 반도에 인접한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남유다에서 애굽 초입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바벨론의 공격으로부터 결코 피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저자는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칠 때에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가 바벨론의 칼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7절이 다바네스에 대한 단어로 마무리되고 8절은 다시 다바네스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점에서 7절의 장소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8절에 기록된 신탁은 앞의 본문과 구별됩니다. 왜냐하면 1절부터 7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메시지는 남유다 땅에서 주어진 것이라면, 8절은 다바네스에서 주어진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계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과 자발적으로 도망간 애굽에서도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 땅의 경계를 넘어 유다백성들의 초기 정착지인 애굽의 다바네스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있는 바벨론의 왕까지 종으로 삼아 이곳 애굽까지 내려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게 하심으로써 온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십니다. 애굽에서 바벨론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 말씀을 무시했던 유다 자손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그 유다 자손과 같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애써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겠지 이러한 생각으로 버리고 항상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심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고 결단하고 다짐하여 순종의 길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