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46:13-28

◎본문: 렘 46:13-28

◎개요

13-24절 바벨론의 애굽 침략

25-26절 바벨론의 손에 넘겨질 애굽

27-28절 야곱의 구원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3절부터 24절까지는 바벨론의 애굽 침략에 관한 내용이고, 25절부터 26절까지는 바벨론의 손에 넘겨질 애굽을 말씀하며, 27절부터 28절까지는 야곱의 귀환, 즉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13절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이야기한 말씀이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예언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으로 진격하여 공격할 것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와 애굽 연합군을 격퇴시켰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선대왕인 나보폴라사르가 사망하자 바벨론으로 돌아가 왕위를 이어받았고, 곧바로 애굽으로 진격합니다. 애굽은 갈그미스를 오가며 지중해 동편의 패권을 일시적으로 장악했고,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여호야김을 세움으로써 유다의 왕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이 바벨론에 밀리고, 바벨론이 레반트 지역을 장악하자 친애굽 정책을 펼쳤던 군소국가들은 곧 바벨론의 힘에 굴복하고 말게 됩니다.

바벨론은 애굽을 정복하지 못했지만, 애굽이 지중해 동편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했으며, 애굽은 오랫동안 자신의 땅에서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14절에는 복수 명령형 4회, 단수 명령형 2회 복합되어 나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선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너희는 들려 주어라가 두 번 나오며, 마지막으로 너희는 말하라가 기록되었습니다. 처음 세 명령을 포함하는 14절 상반절은 너희는 애굽에서 선포하라. 너희는 믹돌에 들려주어라. 그리고 놉과 다바네스에 돌려주어라로 번역됩니다. 13절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면, 14절에 기록된 복수형 너희는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믹돌, 놉, 그리고 다바네스는 예레미야 44장 1절에서 언급된 지역으로 애굽 하부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예언자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을 향해 굳건히 서서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칼이 네 사방을 삼켰다라는 문구는 믹돌, 놉, 그리고 다바네스에 거주하는 자들이 굳건히 서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서술합니다. 예언자는 사방이 위험에 둘러싸여 있음을 서술하고, 이제 바벨론의 진격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15절은 너희 장사들이 쓰러짐은 어찌함이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장사, 용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힘이 센 수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황소는 풍요의 상징이기도 한 아피스를 가리키는데, 예언자는 이 단어를 통해 용사와 애굽의 신인 아피스의 쓰러짐을 중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쓰러지고 일어서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몰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쓰러지다라는 단어는 잠언에서 폭우에 쓰러지는 곡식을 묘사하며, 그것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임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저자는 애굽을 심판하는 분이 여호와임을 선언합니다.

여호와는 애굽의 용사와 신을 심판하는 분이며, 애굽은 심각한 위치에 처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죠. 저자는 단어 넘어지다와 엎드러지다를 연속으로 나열하는데, 이것은 6절과 12절에서도 나옵니다. 이러한 심판 용어의 연속은 생존자가 거의 없을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죠. 애굽 사람들은 포악한 칼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앞서 언급된 재앙 묘사는 그것이 대단히 어려울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문장은 기회를 허비하고 말았다로 이해될 수 있지만, 애굽의 바로에 대한 언어유희가 담겨 있습니다. 18절에 따르면 저자는 독특하게 바벨론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이를 통해 선포의 확실성을 재차 확인합니다. 저자는 바벨론을 다볼과 갈멜에 비유하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동사보다 앞에 배열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볼과 갈멜은 590미터, 550미터 정도로 그리 높지 않지만, 다볼은 이스르엘 평지의 북쪽에 위치한 산이며, 갈멜은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를 상대한 산입니다. 이곳은 모두 평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산입니다. 이로써 저자는 바벨론의 침략이 확실함을 재차 강조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온다면, 애굽은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 말씀하죠. 본문은 여성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애굽을 묘사합니다. 애굽은 19절에서는 딸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었고, 20절에서는 암송아지에 비유됩니다. 11절에서도 애굽을 딸로 표현하죠. 국가 또는 도시를 여성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시온, 이스라엘을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놉이 황무하여 불에 타다라는 이미지 역시 유다 심판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마찬가지로 19절에서 애굽에 사는, 사는 이라는 단어와 주민이라는 단어는 동일한 단어이며, 예레미야는 앞서 유다의 멸망으로 주민이 없을 것이라는 심판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 심판 선포에 사용되었던 방식을 활용하여 애굽의 운명이 유다와 같이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애굽은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에 비유됩니다. 저자는 아름다운 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하여 애굽의 풍요로움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애굽이 재앙과 수칠르 당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바벨론 군대를 쇠파리 떼로 묘사하는데, 중복된 표현을 사용하여 바벨론이 반드시 올 것이고, 한 차례의 침공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다시 한번 딸, 애굽을 말하며 11절과 19절을 소환합니다. 애굽을 소환하는 이유는 그들이 당할 수치를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심판을 묘사하는 동사가 빈번하게 완료형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이죠. 19절에 오리라, 21절에 도망하다, 23절에 자르다. 저자는 이렇게 완료형 동사를 빈번하게 활용함으로써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묘사합니다.

25절부터 28절까지는 애굽의 회복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도 약속하십니다. 억압하는 자에 대한 심판이 억압받는 자의 구원이 됩니다. 먼 이방 땅에서 자신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유다백성을 향해 언약 관계를 상기시키며 용기를 북돋워주십니다. 사로잡은 나라들은 다 사라져도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 징계는 있어도 진멸이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심판 중에도 살아남았다면 자기 죄로 인해 당한 고난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살려주신 주권자의 섭리를 묻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분명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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