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렘 47:1-48:10


◎ 본문: 렘 47:1-48:10
◎ 제목: 돌이킬 수 없는 심판

1. 본문 개요
    a. 47:1-7           블레셋에 대한 예언의 말씀
    b. 48:1-10           모압에 대한 예언의 말씀


2. 관찰
    a. 47:1절: 시대적 배경
    b. 2-3절: 북쪽에서 오는 군대
    c. 4-5절: 블레셋의 멸망
    d. 6-7절: 여호와의 칼
    e. 48:1-6절: 모압의 부르짖음과 도망
    f. 7-11절: 폐허가 되는 모압

3. 적용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렘 47장과 48:1-10은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남 유다의 서편에, 모압은 동편에 위치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해서 바벨론을 통해 애굽을 심판하신 것처럼,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를 심판하고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의 경계를 설명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심판의 칼날을 피할 강대국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멸망 뿐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훨씬 전부터 그 곳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가나안 지역을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부를 때, ‘팔레스타인’이 바로 ‘블레셋’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은 고대 이 두 나라 간의 전쟁의 연장선상인 샘입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끝끝네 정복하지 못한 족속이 바로 ‘블레셋 족속’입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가나안 땅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과 충돌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여기에서 ‘시내’는 바벨론에 위치한 유프라테스 강을 지칭하는 표현일 겁니다. 이 물결은 매우 거세어서 블레셋 가운데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만큼 크고 강한 바벨론의 군대입니다. 3절에 ‘군마의 발굽 소리’, ‘달리는 병거 바퀴의 진동하는 소리’ 등은 바벨론의 군대의 숫자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은유합니다. 그래서 그 소리만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손은 힘이 풀려 무기도 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4절에서는 블레셋이 공격당할 때에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다 차단되어 버린다고 서술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바벨론에 의해 유린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줄 자들을 다 끊어버리십니다. 그리고 원래 해양민족이었던 블레셋 족속의 일부가 ‘갑돌 섬’에 남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그 곳으로 보내어 그들도 유린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블레셋을 향한 심판은 전역에 미쳐져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멸하실 것입니다. 

    48:1절부터는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나열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과 오랜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고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7절에 모압은 자신들의 업적과 보물, 그리고 그모스 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며 영광에 한껏 고취되었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허무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칼인 ‘바벨론’이 도착하던 순간 그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치욕의 진창에 처박히게 되고, 자신들이 섬기던 ‘그모스 신상’은 포로들과 함께 볼모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고대의 전쟁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그모스가 포로가 된다는 것은 패전국가인 모압의 ‘그모스 신상’이 그대로 옮겨져서 바벨론의 신전에 놓이게 되는 것을 지칭합니다. 그야말로 처절한 패배를 당하는 모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압을 처라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칼은 다름 아닌 바벨론이라는 사실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블레셋과 모압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대명사’입니다. 지금 당장은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는 것 같고, 교만하여 어떤 것도 꺾을 수 없을 것처럼 자신한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도무지 멈추지 않는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심판의 날에는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고, 심판 받는 당사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신을 높이 던 자랑거리들이 결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재물과 권력, 영광은 결코 심판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다 헛될 뿐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믿는 자라 할지라도 혹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것을 놓지 않고 쥐고 있다가 우리도 멸망 받을 부류와 동급으로 취급당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정해 진 일입니다. 그 심판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직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늘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도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내 물질도, 권력도, 명예도, 나의 감정이나 지식도 다 하나님 아래 다스림 받는 삶을 살아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멸망이 확정된 악인들의 살길은 ‘광야’로 도망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잠깐 피할 수 있어도 생명을 유지할 길은 없습니다. 블레셋과 모압이 누려온 것들은 다 거짓 샬롬이었습니다. 새로운 역사 앞에서 아무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나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쌓아 올린 것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방패막이 삼는다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거짓 안전에 나 자신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내려놓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늘 죄에 대해 민감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삶은 다름 아닌 ‘자기 욕망’을 정당화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여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대행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블레셋과 모압은 깨달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더딘 깨달음은 패망을 불렀습니다. 더 늦기 전에 죄의 심각성도, 회개의 긴박성도, 심판의 두려움도 모르는 안일하고 교만한 태도를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붙드는 우리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매 순간 죄가 깨달아질 때, 통렬한 회개를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냄으로 늘 은혜의 자리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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