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49:7-22

◎본문: 렘 49:7-22

◎개요

7-11절 에돔의 멸망

12-18절 에돔의 황폐

19-22절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7절부터 11절까지는 에돔의 멸망에 관한 말씀, 12절부터 18절까지는 에돔의 황폐에 대해서, 그리고 19절부터 22절까지는 여호와께서 택한 자를 세우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돔은 사해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가장 먼저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여서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데만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 36장에서 처음 나오는데, 이 이름은 에돔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며 족장으로 나옵니다. 아모스에서 데만은 보스라와 평행하게 기록되어 두 도시가 동일한 곳이거나 또는 근접한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저자는 에돔에 위치한 주요 도시인 데만을 지혜가 뛰어난 지역으로 언급합니다. 우리는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찾아온 사람 가운데 데만 사람 엘리바스를 생각할 수 있죠. 욥과 마찬가지로 그는 지혜를 가진 자였으며, 전통적 지혜에 익숙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예언자는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즉, 데만이 지혜가 사라졌느냐 라고 말하며 에돔의 심판에 직면하여 데만의 지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혜라는 표현은 여기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7절 마지막에는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고 다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7절에서 지혜라는 용어를 두 차례나 언급하며 여호와의 심판에 속수무책인 데만을 묘사합니다. 그 사이에는 명철이 기록되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지혜와 명철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있는 자와 명철한 자가 지혜없는 자처럼 되었음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에돔의 지도자들도 무력하게 되었다고 서술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끊어졌다는 단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를 멸망시키다를 표현할 때 사용된 동사입니다. 에돔의 명철과 지혜를 멸망시키는 것은 곧 에돔에 대한 멸망을 표현합니다. 8절은 드단에 대해 말합니다. 드단이라는 명칭은 창세기 10장에서 구스의 아들로 처음 언급되었고, 이후에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통해 얻은 아들로 나옵니다. 그들은 상거래에 유능한 자들이었으며, 이것은 국제 정세에도 밝았음을 암시합니다. 드단은 지중해 동편에 위치한 지역은 아니었으며, 에돔의 남동쪽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의 서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드단은 에돔의 영토는 아니었지만, 저자는 데만에서 드단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에돔의 영향력이 끼치는 범위를 포괄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은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라고 번역하지만 원문은 명령형을 세 번 언급함으로써 긴박감을 강조하고 있죠. 직역하면 도망하라! 돌이켜라! 깊은 곳에 숨어라!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거주하다는 동사가 반복됩니다. 드단 주민은 역사 무대에 나오지 못하고 없는 듯 살아야 합니다. 갑자기 드단을 언급하며 에돔에 대한 심판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저자는 에돔과 드단에게 동일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 선언합니다. 8절 하반절은 동사보다 앞에 에서의 재난을 배열하여 드단에게도 에돔에게 닥칠 재난이 닥칠 것이라 강조합니다.

예언자들은 종종 예언자적 완료를 사용하여 예언선포를 미래적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으로 표현하는데, 예언자에게 여호와의 심판은 이미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9절은 심판자를 포도를 거두는 자와 도둑에 비유합니다. 저자는 여호와의 심판을 서술하며 결코 남김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호와는 그들이 숨은 곳까지 찾아가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여호와께서 에서의 옷을 벗기며, 그의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할 것이라고 서술합니다.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다는 말씀은 에서를 향한 심판 묘사로서, 치마를 얼굴에까지 들춰서 수치를 드러낸다는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유사한 표현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에돔에게 적용하여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다라고 적용합니다. 특히 드러나라는 문구는 포로로 끌려가다를 의미하여, 포로로 끌려갈 에돔을 서술합니다. 덧붙여 자손, 형제, 이웃의 멸망을 언급함으로써, 에돔과 관련된 자들인 형제와 이웃과 미래의 희망인 자손을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네 고아들을 버려라 내가 그들을 살려주리라 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심판의 때에 에돔이 자식들 그리고 고아가 된 아이를 버릴 것이라고 서술하며 반인륜 행태를 비판합니다. 이는 에돔의 자손이 멸망한다는 것과 관련있죠. 그러나 여호와는 그들을 보살필 것입니다.

12절부터 18절은 에돔의 황폐함을 서술합니다. 11절에는 술잔을 마시다라는 어근이 다섯 번이나 기록되었습니다. 먼저는 술잔을 마실 필요가 없는 자가 반드시 마셔야 했다고 서술하고, 둘째는 에돔에게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마시다라는 동사를 활용하여 동의어 반복을 두 차례나 사용합니다. 또한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라라는 문장에서 면하다라는 동사를 세 차례나 사용합니다. 이로써 저자는 여호와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반드시 마셔야 한다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13절에서 놀램, 치욕거리, 황폐함과 저줏거리는 심판의 결과를 묘사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보스라는 에돔의 도시인 데만과 평행하게 나옵니다.

14절은 여러 나라에서 자신의 사절을 불러모으시는 여호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는 수동태를 사용하여 사절들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내가 소식을 들었다고 서술함으로써 명령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모여라, 쳐라, 그리고 일어나라는 명령형을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명령을 받는 이유는 싸우기 위함이죠. 16절은 에돔을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에돔 지역에는 험한 산지가 있어 그들의 주거 지역은 독수리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은 것에 비유됩니다. 에돔의 지형 지물로 인해 그들의 마음에는 스스로를 속이는 교만, 즉 누구도 자신들을 정복할 수 없으리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에돔을 독수리의 보금자리에서 끌어내리라고 선언합니다.

19절부터는 여호와의 심판을 사자의 출현으로 묘사합니다. 사자가 목장에 나타날 때 모든 동물이 뿔뿔이 흩어지듯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인해 에돔은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심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죠. 에돔은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는 흩어져 아무도 없는 곳에 자신이 택한 자를 세울 것입니다.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날개를 에돔 위에 펼 것이라고 말합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보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문은 그것을 오히려 심판의 의미로 활용합니다. 이는 앞서 에돔을 독수리에 비유하는 것과 연결되죠. 저자는 새로운 독수리가 에돔을 몰아내고 둥지를 차지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돔을 진통하는 여인에 비유하죠. 이는 산고를 당하는 여인을 가리키는데, 모압이 당할 심판 또한 유사하게 비유되었습니다.

열방이 두려워할 자라고 착각하던 에돔이 열방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사자가 양 떼를 공격하듯 열방을 통해 에돔을 쳐서 백성을 쫓아낼 것입니다. 열방은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의 위용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에돔의 철저한 파괴와 재앙을 보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 후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세우심으로써, 여호와의 지혜에 필적할 자 없고, 여호와의 계획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없음을 알게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잡고 서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교만해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어도 안됩니다. 겸손함으로 하지만 담대함으로 굳게, 그리고 반석되신 예수님 위에 서서 환난과 고난이 와도 끝까지 참고 견디고,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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