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렘 49:23-39

◎본문: 렘 49:23-39

◎개요

23-27절 다메섹 신탁

28-33절 게달과 하솔 신탁

34-39절 엘람 신탁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3절부터 27절까지는 다메섹 신탁에 대한 내용이고, 28절부터 33절까지는 게달과 하솔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34절부터 39절까지는 엘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메섹은 오늘날 다마스쿠스라 불리는 곳으로, 시리아와 아람이 수도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으며,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잇는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즉,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시리아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어서 본문은 수치를 당하리니라는 히브리어로 시작을 하는데, 완료형을 써서 이미 수치를 당한 것처럼 표현합니다. 시리아가 주전 733년 있었던 시리아와 에브라임 전쟁으로 인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을 고려한다면 다메섹이 수치를 당하리니보다는 수치를 당했다로 완료형을 살려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하맛과 아르밧 역시 이때 점령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흉한 소문을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소문이라는 단어와 듣다라는 단어는 동일한 어근을 갖고 있습니다. 동일한 어근을 사용하여 다메섹에 대한 수치와 좋지 않은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라고 말하는데, 무엇보다 다메섹은 지리적으로 바닷가와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라기보다는 근심이 바다에서 동요하고 있다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다메섹이 수치를 당했다는 것은 도시의 멸망과 연결됩니다. 24절은 달아나고자 하나 달아나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떨림이 그를 움켜잡다는 뜻은 패닉에 빠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어서 본문은 다메섹이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해산하는 여인에 비유합니다.

이와 유사한 것을 산고를 당하는 여인에 비유되는 모압 선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다메섹이 적의 침공에 달아나려 시도하지만 패닉에 빠져있고 해산하는 여인과 같아서 달아날 수 없는 상황임을 묘사한 것입니다. 저자는 그것이 다메섹 주민을 움켜잡고 사로잡았다고 서술합니다. 움켜잡다와 사로잡았다라는 두 동사는 어근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동일한 자음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며, 더 나아가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다메섹이 사로잡혔음을 반복하여 서술하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25절은 어떻게, 어찌하여라는 외마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찬송의 성읍은 명성있는 성읍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의 즐거운 성읍은 이방나라를 여호와의 성읍이라 부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을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26절은 다메섹 장정들이 거리에서 엎드러진다고 말합니다. 장정들이라는 단어와 거리라는 단어는 동일한 자음의 순서를 역으로 서술하여 표현한 언어유희입니다. 다메섹에 대한 선포는 모압의 정정들이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다라는 선포와 비슷하죠. 장정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선별된 자임을 가리키지만, 그들이 엎드러지고, 멸절될 것이라며 그들의 죽음을 서술합니다. 27절에 다메섹 도시는 화염에 휩싸일 것을 말씀하죠.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른다는 본문이 보여주듯이 성벽과 도시가 불에 타는 것은 멸망을 가리킵니다.

28절 이하에는 게달과 하솔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28절은 게달과 하솔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도시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에 따르면 28절은 게달에 대하여 그리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공격하는 하솔의 나라들에 대하여 라고 서술합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나오며, 아라비아 지역에서 터를 잡고 거주하는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목 생활을 하며 활을 잘 다루었을 뿐 아니라, 상거래를 하며 주변국과 교역을 했던 자들로 보입니다. 이사야 42장 11절은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을 평행하게 서술하는데, 하솔은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28절에 일어나라, 올라가라 그리고 황폐하게 하라라고 말씀하는데, 명령을 세 차례 연속하여 말함으로써 긴박감을 더합니다. 28절이 게달과 하솔을 공격하는 바벨론에게 하는 명령이라면, 30절에 기술된 도망쳐라, 빨리 도망쳐라, 깊은 데로 숨어라는 점령을 당하는 하솔에 대한 명령입니다. 이로써 여호와가 징계하는 바벨론을 이끄는 동시에 피정복 국가에게 도피하라고 명령하는 주체임을 서술합니다. 29절은 미완료 형태를 사용하여 정복자에게 빼앗고, 소유로 삼고, 외쳐라 라고 명령합니다. 장막과 양 떼는 유목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삶의 터전이므로 그것을 빼앗으라는 명령은 게달과 하솔의 삶의 기반이 사라지게 됨을 가리키는 것이죠.

게달과 하솔에게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는 것을 외치라는 명령도 받습니다. 사방의 두려움은 동일한 표현이 예루살렘에 닥칠 위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고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둔 바스훌의 이름이 마골밋사빕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는 표현은 예루살렘 멸망을 서술한 것처럼, 게달이 멸망할 것을 보여줍니다. 30절에는 하솔을 향한 세 차례 복수 명령형이 나오며, 이를 통해 저자는 촌각을 다투는 긴박감을 전달합니다. 게다가 도망하라는 명령과 함께 빨리라는 부사를 언급하여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그들을 심판할 자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언급하는데,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에 바벨론 왕으로 등극했으므로, 이러한 표현은 주전 605년 이후로 간주됩니다.

느부갓네살은 하솔의 심판을 시행하는 자로만 나오지 않습니다. 저자는 모략을 세우고, 계책을 세웠다는 표현을 반복하며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말하죠. 게달과 하솔이 멸망당하고 그 땅을 황폐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통치하시고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어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온 나라, 모든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생각 안에 하나님을 국한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을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것은 교만에 불과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현상들만 봐도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지만, 왜 우리에게 작고 큰 고난과 환난을 주시는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이면 아멘, 감사합니다.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도 이러한 감사와 순종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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