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렘 51:33-44


◎ 본문: 렘 51장 33-44
◎ 제목: 생명이 사라진 땅

1. 본문 개요
    a. 51:33-40           여호와의 보복
    b. 51:41-44           바벨론 파멸에 대한 애가


2. 관찰
    a. 33절: 추수 때가 이르리라
    b. 34-35절: 바벨론의 만행
    c. 36-37절: 여호와의 보복
    d. 38-40절: 영원한 잠
    e. 41-43절: 애가
    f. 44절: 바벨론 심판

3. 적용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일어난 일이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통해 이미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우리의 구원처럼,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완성 될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의 모델하우스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유무’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생명이 있고, 세상 나라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이 지구상의 유일한 공동체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수많은 고대의 ‘제국’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증거이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대변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셈입니다. 한때 힘과 권세와 부귀를 자랑하던 제국의 이름들은 모두 풀처럼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 시간을 정복한 제국은 없는 셈이지요.

    하지만 ‘생명’으로 충만한 영원한 보좌는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매 주일 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삶의 자리에서 그 ‘생명의 보좌’를 누리고 경험합니다. 그 생명을 누리는 자리가 다름 아닌 ‘예배’입니다. 그 예배를 우리는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되는 바벨론 심판의 때를 묘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타작마당’ 그리고 ‘추수’의 시기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추수를 위해서는 ‘타작마당’이 필요한데, 땅을 타작마당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발로 밟아 평평하게 고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33절에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타작마당으로 쓰기 위해 땅을 밟는 작업을 하는 것처럼, 바벨론이 적군의 침략에 의해 짓밟힐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4-35절에 느부갓네살에 대해 서술을 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칭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34-35절에 서술된 느부갓네살 왕의 모든 만행이 바벨론에게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송사를 하는 주체가 ‘시온 주민’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자신이 느부갓네살에게 당한 일을 하나님께 고소합니다. 바벨론은 유다를 먹고 빨라먹은 뒤 빈껍데기만 남겨 놓았습니다. 괴물 같이 나타나 유다의 좋은 것을 다 빼앗고 사람은 포로로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 고통을 바벨론도 당하기 원한다고 유다가 혼잣말로 탄식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탄식에 하나님은 귀 기울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억울하여 신음하고 울부짖는 약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분이심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놓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기 일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힘든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고 지금도 그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버텨 낼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송사를 들으시고는 보복하기 위해 일어나신다고 36절에 언급합니다. 어떻게 일어나십니까? 바다를 말리시고 샘을 말려버리신답니다. 37절에는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고,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탄식거리가 되고 주민은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히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38-39절에 젊은 사자 같이 새끼 사자 같이 기세를 올리며 잔뜩 흥분한 바벨론에게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연회를 열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0절에 바벨론의 결말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숫양의 마지막 식사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죽음’으로 가득한 그들의 최후를 하나님은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41-44절은 ‘바벨론의 파멜에 대한 애가’로서 바벨론의 황폐함을 구슬프게 노래합니다.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어,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44절은 바벨론의 멸망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 ‘벨’을 벌하는 것으로 묘사하십니다. 바벨론은 점령한 곳의 모든 ‘신상’들을 가지고 와서 자신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신을 포로로 삼았던 겁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신을 멸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으로 인해 파멸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생명의 온기도 바벨론에 남겨두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탄식거리가 될 것이며, 결국 온 세상을 삼켰던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도로 삼켜질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벨론의 말망은 반대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나라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소식’이 될 것임을 봅니다. 바벨론의 철권 아래 고통당하던 자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영화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의지할 것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뿐임을 온 몸으로 고백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의 길을 따라 가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선택지이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결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변함이 없는 것도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생명의 주인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 순간에 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구원 받은 인생은 그 구원받은 순간부터 영생을 누립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 삶을 소망으로 붙잡을 때에 우리에게 생명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참 생명을 누리고 승리의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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