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시 106:13-31

◎ 본문: 시 106:13-31
◎ 제목: 잊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1. 본문 개요
    a. 시 106:13-18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스라엘
    b. 시 106:19-31           광야에서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

2. 관찰
    a. 13-15절: 망각과 시험에 대한 책임
    b. 16-18절: 모세와 아론을 향한 질투와 시기
    c. 19-23절: 호렙에서 만든 송아지 우상
    d. 24-27절: 말씀에 대한 불신과 하나님의 경고
    e. 28-31절: 바알 브올 사건과 하나님의 심판

3. 적용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복 가운데 ‘망각의 복’은 중요한 복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지난날의 아픔, 실수 등은 잊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 곱씹으며 기억한다면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반면에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가 그러합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는 증거가 드러난 일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놓쳐버리고, 은혜를 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망각’의 결과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 본 본문의 마지막 시 106:12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던 과거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편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의 조상인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특별히 ‘홍해를 건넌 사건’을 보시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필두로 하여 소고를 치며 노래하며 춤추었고, 모세는 그 홍해를 건넌 사건을 기념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홍해를 건넜고, 그 홍해를 건너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로 넘어오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합니다.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그 결과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14절에 ‘욕심을 크게 내어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욕심을 크게 냈다.’는 표현은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욕망에 사로잡힌 상태, 곧 탐욕에 붙들린 모습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광야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15절에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자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고기 먹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자 메추라기를 보내주셨다는 겁니다. 하지만 15절 말미에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다.’고 단서를 붙입니다. 모세는 결국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거역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메추라기 고기가 잇 사이에 여전히 있을 때에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제공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했고, 그 기도한 것이 이루어졌다면 잘 분별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구한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에 손해가 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해서 ‘물질’이 우리 각 개인이나 가정에 쌓였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높은 직책을 얻기를 구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올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합당한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구하는 낮고 겸비한 마음입니다. 내가 욕심을 크게 내어 얻는 것은 유익이 아니라 도리어 화가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아와 왜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혔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니 기다림이 사라집니다. 자꾸만 조바심을 냅니다. 만약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위해 10개의 재앙을 이집트에 내리신 하나님,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약속을 기억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깊이 있게 개입하시는 그 때와 방법을 기다리며 온전히 순종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붙드는 자들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지금 이 순간 ‘영생’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되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오시는 것과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언제 그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가능합니까? 말씀이 뜻하는 바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말씀이 이루어 질 때를 기다릴 때 가능합니다. 하지만 망각은 조급함을 낳고, 조급함은 탐욕으로 이어집니다. 광야에서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자 온갖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의심하였고, 각종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사건으로 땅이 갈라져 멸망한 일, 호렙 산에서 금을 부어 송아지 우상을 만든 일, 바알 브올 사건으로 음행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거역한 ‘가데스 바네아 사건’ 등 셀 수 없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또한 ‘탐욕’의 또 다른 원인은 ‘질투심’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질투하여 다른 이들을 리더로 세워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렸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 너무 오랜 시간을 끈다고 생각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바꾸어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망각한 결과 우상을 만들고 숭배한 것은 ‘모세 너만 하나님과 교제하냐 우리도 우리 눈 앞에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그릇된 ‘질투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결과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기쁨의 땅, 약속의 땅을 멸시하고, 결국 들어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26-27절에 그들을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셔서 출애굽 한 1세대들은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먼 훗날 그들의 후손을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탐욕과 우상숭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심어 주셨던 ‘소망’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마음 한편에 원망만 자리 잡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붙들면, 그 은혜가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잊지 않는 자’ 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잊기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엉뚱한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바로 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더욱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잊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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