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왕하 2:15-25

◎본문: 왕하 2:15-25

◎개요

15-18절 선지자직을 공인받은 엘리사

19-25절 엘리사의 첫 사역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수요예배가 있습니다. 모두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여 함께 주님을 높이는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5절부터 18절까지는 선지자직을 공인받은 엘리사에 관한 내용이고, 19절부터 25절까지는 엘리사의 첫 사역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리고에 거주하는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 시신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엘리야의 영만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야의 시신은 여호와의 영이 들어서 산이나 골짜기에 던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들의 주장은 억측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엘리야가 기근을 선포하자 아합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과 인근 이방 나라들 온 지역에 사람을 보내 엘리야의 행방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한 곳에 나타났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왕궁 책임자 오바댜가 여호와의 영이 엘리야를 들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장소로 옮기면 어떻게 하냐고 언급한 데서 암시되었죠.

본문 15절부터 보면, 엘리야와 같은 동일한 권능을 행하는 엘리사의 모습을 본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이 엘리사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고 엎드려 절합니다. 엘리야에게 가졌던 경외심을 동일하게 표현하죠. 하지만 어리석게도 이 제자들은 혹시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엘리야의 시체를 찾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오십 명의 사람을 보내 샅샅이 수색함으로 엘리야의 승천 사실을 검증하겠다는 불신앙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엘리사는 이들의 강력한 청원에 못 이겨 허락하게 되고 결국 제자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와 책망을 듣게 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 미래의 선지자들인데, 믿음이 없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결국 믿음이 없는 세대는 눈에 보이는 권능을 구하고 그것을 봤어도 또 눈에 보이는 권능을 구하고 계속 눈에 보이는, 안목의 정욕을 구합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셨죠. 우리 모두는 안목의 정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읍의 사람들은 엘리사에게 성읍의 위치는 좋지만, 물이 나빠서 땅이 소산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곡식이나 과일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을 간절히 호소하며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러한 악조건의 상황은 과거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복할 때 말했던 저주를 생각나게도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하죠.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이 여호수아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성읍은 건설되었지만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했던 것이죠. 이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가 물 근원에 던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죠.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죠.

이 표적으로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했고 참 선지자로 인정을 받습니다. 새 그릇에 담긴 소금이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소금이 살균의 역할은 하지만 그릇에 담긴 소량의 소금으로는 기별도 안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 순종했다는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만이 저주와 불임의 땅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내적인 치유를 하실 수 있습니다. 내적인 병의 근원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질 때, 그 병은 고침을 받고 나음을 얻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상처들이 치유하시는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3절부터는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의 사건입니다. 벧엘로 올라갈 때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합니다. 여기에서 작은 아이들이란 단어는 갓난 아기부터 이삼십 대 미혼 청년까지를 뜻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자신의 미성숙함이나 경험 부족을 표현할 때, 또는 타인의 미성숙함을 비하할 때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는 엘리사를 조롱했던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작은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했기 때문이죠. 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의 말을 퍼붓습니다. 가부장 문화가 엄격했던 이 당시 사회에서 이 젊은이들이 외모로 어른을 조롱한다는 것은 이 당시 시대의 도덕과 윤리가 얼마나 해이해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죠.

특히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함부로 말하며 모욕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악한 행동입니다. 참다못한 엘리사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고, 곧바로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그들을 찢어 죽이는 아주 비극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죠. 이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여기에 대한 심판은 그 누구든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나타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있고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히브리서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판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과 관절과 골수까지 새겨지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