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3:1-12
◎개요
1-3절 북 이스라엘 왕 요람의 통치와 평가
4-12절 북이스라엘 연합군과 모압의 전쟁
A.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4-5절)
B. 요람과 여호사밧의 동맹(6-7절)
C. 출정 중에 만난 위기(8-12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전장인 열왕기하 1, 2장에서는 위대했던 선지자 엘리야 시대가 저물고, 이어서 후계자 엘리사 선지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서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입니다. 이 선지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나 평가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3장에서도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 왕이 등장하고 그의 행적에 대해 성경은 평가합니다. 1절 북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합이 누구입니까?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악명 높은 왕입니다. 이 아합 왕의 아들이 여호람입니다. 또, 여호람 왕은 그의 직전 2년 간 다스린, 아하시야 왕의 형제로, 아하시야 왕이 아들 없이 죽었기에, 형제인 여호람에게 왕위가 계승된 왕입니다. 이 여호람 왕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평가합니까?
2절.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호람 왕은 아버지 아합왕보다는 덜 악한 왕처럼 느껴집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여호람 왕의 시대는 여전히 아버지 아합 때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어머니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었고, 어머니 이세벨의 영향으로, 우상숭배와 마술이 북이스라엘에 여전했기 때문입니다.
또, 3절 말씀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다 말합니다. 여기서 이 여로보암의 죄는 바로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하게 했습니다. 이 여로보암이 죽은지 6-70년이 지났지만, 이 죄의 영향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여호람 왕은 그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 서 있는 기둥을 겨우 없앴을 뿐, 북이스라엘의 타락과 멸망으로 향해가는 역사를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열왕기 기자를 통한 평가를 볼 때, 우리는 우상과의 반쪽짜리 결별이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상과의 온전한 결별, 철저히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온전한 신앙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깨뜨리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우리를 둘러싼 죄와 세상의 영향이 강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우리 모습 그대로, 두 손 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빚어 가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4-5절 말씀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호람 왕의 할아버지, 오므리 왕 때, 북이스라엘의 속국이 된 모압이, 여호람 왕 때 독립을 꾀한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몇 년 사이 왕이 두번 바뀌는 정세가 어수선한 때, 여호람 왕 초기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람 왕은 모압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득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4절 무려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북이스라엘에 모압이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막대한 양의 조공입니다. 이 경제적 손실에 분노하여, 여호람은 곧 전쟁 출정에 나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무리 찾아봐도, 전쟁이라는 큰 일을 앞에 두고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여호람 왕에게 바알의 주상을 깨뜨리는 반쪽짜리 결별은 있었지만, 물질이라는 더 큰 우상 앞에서 하나님은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경시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물질과 사람의 도움만을 쫓고 있습니다. 7절 그는 이 일에, 하나님이 아니라,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가 우리 삶에 다가올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마치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우리 삶에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재산, 건강, 지위, 등 세상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지하는 것을 빼앗아가실 때, 우리의 반응은 과연 어떻습니까? 특별히 오늘 9절 말씀에 보면, 설상가상으로 하나님 없이 나아간 그 무모한 자리에서 난관을 만났습니다. 바로 길을 둘러 간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의 상황을 만났을 때입니다. 전쟁에 물이 없으면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곤란한 상황을 통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히고 좌우가 막힐 때, 하늘, 곧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려움 중에 10절 이스라엘의 왕처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신다고 섣불리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이 11절에 하나님을 떠올린 것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넘어지고 환란을 당한다 할지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기를 소망합니다. 곤란의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기 위해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은 여호사밧 왕처럼, 우리도 당장 눈에 보이는 우리의 수단과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먼저 찾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