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왕하 5:1-14

◎본문: 왕하 5:1-14

◎개요

1-6절 나병환자 나아만

7-14절 나병에서 회복된 나아만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6절까지는 나병환자 나아만에 대해서 말씀하고 7절부터 14절까지는 나병에서 회복된 나아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질병으로 나오는 나병은 지금으로 말하면, 광범위한 피부질환을 지칭합니다. 레위기에서 사람만 아니라 집, 가죽, 옷 등의 물질에 생긴 곰팡이도 나병으로 불렀다는 사실에서도 살펴볼 수 있죠. 나병의 증상은 피부의 비늘과 얼룩입니다. 종종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병이 발병하기도 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죠. 제사장에 의해 나병으로 부정하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 스스로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공포하고 진영 밖에서 일반 백성과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경우는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하며, 정결 예식을 행한 후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죠.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으로 과거 아람을 구한 인물입니다. 이에 비해 그가 잡아 온 어린 소녀는 하찮기 이를 데 없게 여겨졌습니다. 나아만은 권력과 명예를 가졌으나 자신의 질병인 나병을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나병환자일 뿐이고, 어린 소녀는 힘없는 포로였지만 선지자의 능력을 아는 생명의 지식을 가진 노예였습니다. 존재의 힘은 세상 지위와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믿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방 땅에 잡혀 간 소녀는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의 피부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 선지자의 능력이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죠. 오히려 아람이 시비를 걸어서 침공을 꾀하려는 줄로 착각하고 공포에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왕의 위엄을 가져야 그 나라를 증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증언의 능력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거기서 나오는 믿음의 언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위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여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나아만은 말과 병거를 거닐고 막대한 예물을 가지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맨발로 자신을 영접하고 환대할 것이라고 기대했겠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다만 사자를 보내어 나병이 나을 처방만을 내렸을 뿐이죠. 나아만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래에 필요한 많은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종으로 낮아지는 겸손이었습니다. 나는 가망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함과 전적으로 은혜를 구하려는 가난한, 겸손한 마음인 것이죠. 하지만 나아만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위신을 구긴 나아만은 화를 내며 돌아섭니다. 아직도 체면을 버릴 만큼 낮아져 있지도 않고, 도움을 구할 만큼 간절하지도 않고, 무릎 꿇을 만큼 절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아만의 종이 조심스럽게 순종할 것을 설득합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요단강에 몸을 담급니다. 일곱 번 몸을 담그자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병이 깨끗이 치료됩니다. 더 낮아지고 버려야 그 비어있는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 새 사람을 입을 수 없듯이, 내려놓지 않고 은혜에 잠길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오롯이 순종할 때에만 경험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하죠. 정작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은 소수의 작은 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아만이 그러했죠. 자신의 지위, 자존심,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결국 거기에서 뒤돌아서서 아람으로 돌아갔다면 평생 나병환자로 살았어야 했겠죠.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어린 소녀는 오히려 믿음의 말을 하는 자였고,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설득하는 믿음을 보여주죠. 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사소하고 쉬운 일인데, 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거였죠.

우리는 때로 사소하고 쉽고 당연한 일이라고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일을 하려면 먼저 아주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충성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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