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왕하6:15-23
◎개요15-23절 엘리사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돌보심 A. 아람 군대와 여호와의 군대(15-17절) B. 북이스라엘의 승리(18-23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읽으신 본문은 열왕기하 6장 8절부터 23절까지 이야기 하반부로, 북이스라엘과 아람 간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북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승리한 내용입니다. 아람의 왕 벤하닷은 여호람 왕의 아버지 아합 왕이 아람을 침공한 후부터, 북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0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때문에 그가 침공하고자 하는 계획이 번번히 좌절되었습니다. 아람 왕은 자신이 침실에서 은밀히 한 말을 엘리사가 이스라엘 여호람 왕에게 고한다는 것을 듣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13절 그는 사람을 보내어 엘리사를 잡겠다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역사,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아람 왕 벤하닷은 자신이 침실에서 한 말을 선지자 엘리사가 들은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내통하는 밀고자,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엘리사를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에게 협력하는 밀고자, 첩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뒤에는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아람 왕의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려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뒤에 오늘도 함께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한편, 이렇게 아람 왕처럼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늘의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보이는 대로, 육적인 일, 이 땅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세상과 다르길 소망합니다. 육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길 소망합니다. 어디에서든지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눈에 보이길 소망합니다.
14절입니다. 결국 아람의 벤하닷 왕은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었는데, 그들이 은밀히 밤에 가서 그 성읍, 도단을 에워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벤하닷은 나름대로 인간적으로 철저히 계획하여 실수가 없게 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한 명 때문에, 아람의 수많은 군사, 병거, 말들을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엘리사를 지킬지 모를 이스라엘 군 때문에 빈틈없이 준비한 것입니다. 게다가, 은밀히 밤에 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군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함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것은 실패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엘리사는 큰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엘리사의 종이 아침에 이것을 보고 절망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5절 하반절에 그는 크게 낙심했습니다. 사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싸움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필패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16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무엇이라 말합니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아멘.
놀랍게도 큰 군대를 앞에 두고 엘리사는 꿈쩍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의 눈에는 지금 엘리사와 함께한 자가 아람의 군대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가 영의 눈으로 천군천사 하늘의 군대를 보고 있고, 만군의 여호와, 용사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제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위기를 만날 때,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기를 원합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느끼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도우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기대하길 바랍니다. 이 믿음의 눈을 가질 때, 우리도 담대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겁내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자, 여호와 이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의 불말, 불병거가 눈에 보이는 축복이 있길 소망합니다.
이어 17절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말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청년의 눈이 떠졌습니다. 반면, 18절 그를 치러 온 아람 군대는 엘리사가 기도하여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게 합니다. 영적 눈이 닫힌 아람군대는 육적인 눈마저 어둡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세상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의 운명이 더 갈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따르던 사환은 영안이 열려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는 영광을 갖지만,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을 대적하러 온 아람 군대는 영적 눈뿐만 아니라, 육체의 눈까지 어두워집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대로 그들의 눈이 어둡게 하셨다는 것은 거의 실명 상태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지금 엘리사의 진영과 아람군대 사이 영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원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 곳에, 말씀을 듣는 자는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납니다. 하지만, 말씀을 거부하는 자는 더욱 마음이 굳어가고, 하나님과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11-12절 천국의 비밀에 관해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찌보면, 무서운 말씀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19절에서 엘리사는 눈이 어두워진 아람의 군대를 이끌고 역으로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으로 갑니다. 그들은 도단에서 엘리사를 포위하여 잡으려고 했으나, 거꾸로 그들이 엘리사의 포로가 되어 20절 적진의 한복판, 사마리아 성 한가운데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거기 한가운데서 눈을 뜹니다. 잠시 우리가 여기서 이 장면을 볼 때, 이 승리는 앞선 3장 모압 전쟁에서의 승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열왕기하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압군대의 눈으로 하여금 개천에 비치는 물이 피처럼 보이게 만드셨습니다. 반면, 오늘 6장 아람과 전쟁에서는요. 하나님께서 거꾸로 아람의 눈이 실명된 것처럼 어둡게 하셔서, 그들이 잡으려던 엘리사가, 그들의 안내자로 보이게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 군대가 보았던 눈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오늘 무엇을 보며 가고 있는지 생각하길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 욕심, 세상 경영하는 왕들의 헛된 가르침을 따른다면, 모압 군대처럼, 엉뚱한 것을 볼 수도, 혹은 아람 군대처럼 우리의 눈이 잠시 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우리의 왕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면, 엘리사를 둘러싼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이시는 의의 길 생명의 길이 보이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21절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사로잡은 아람군대를 치고자 했지만, 22절 엘리사는 여호람 왕을 만류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고 먹고 마신 후 아람 왕에게 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는 원수에게 상 차려주시는 역사로 마무리 됩니다. 원수를 선대하시고 이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런 역전의 은혜가 늘 우리에게 충만히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