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9:27-37
◎개요 27-37절 예후를 통한 아합 가문 심판
A. 아하시야의 죽음(27-29절)
B. 이세벨의 죽음(30-37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후를 통해 아합 집안에 심판이 지속되는 내용입니다. 이 심판은 예언에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아합 집안에 이 심판이 계속됩니까? 지도자 아합의 죄 때문입니다. 아합 왕은 바알 제사장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전 이스라엘에 바알숭배를 퍼뜨렸습니다. 또,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계략을 따라,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열왕기상 21장 21절,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3절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합 한 사람을 넘어 아합 집안 전체를 멸망시키겠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합은 지도자, 왕으로서, 나라, 민족 전체가 바알을 숭배하게 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 하게 한 죄는 하나님 앞에 매우 큰 죄였습니다. 아합을 통해 우리는 지도자의 책임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지도자가 악한 길로 가서, 공동체로 하여금 죄 짓게 한다면, 그 공동체만 아니라, 지도자도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가 오직 선한 길로 걸어가도록, 혹시라도 그가 악한 길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국가의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 경제, 직장, 교회, 가정의 지도자를 위해서 모두 해당됩니다. 세상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유다의 왕이지만 아합의 딸인 어머니 아달랴로 인해, 아합과 이세벨의 손자된 아하시야의 멸망과 또, 북이스라엘의 태후 이세벨의 멸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유다 왕 아하시야는요. 이스르엘에서 부상으로 요양 중인 숙부 요람 왕을 문병 갔다가 예후를 만나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 사건을, 역대하 22장 7절, 이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말합니다. 단순히 운이 나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다스리셔서 아하시야의 생명을 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하시야 왕이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들이지만, 아합의 딸 아달랴의 아들로서, 아합의 길을 따르며 악을 행했기 때문에 재위 기간 1년만에 그의 짧은 생이 끝났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의 혈통은 다윗의 혈통을 이은 고귀한 혈통이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그는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은 자, 아합 가문의 죄악을 따랐던 자였습니다. 그 최후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이어서 아합 가문이 바알을 섬기게 한 주요 인물, 악녀 이세벨의 최후가 드디어 등장합니다. 30절 이세벨은 부하 장군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아들 요람 왕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려워하기보다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 꾀와 계략으로 예후에게 정면 대응합니다. 30절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그렇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때부터 군대장관으로 섬긴 예후가 어떤 능력과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았습니다. 따라서 도망하기보다 오히려 화장하고 머리를 꾸미는 등 태후의 위세를 갖추고 높은 창에서 내려 보며 맞섭니다. 31절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이제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세벨이 마지막까지 최후의 도박, 최후 심리전을 펼칩니다. 바로 예후에게 너는 주인을 죽인 시므리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므리는 누구입니까? 열왕기상 16장의 시므리는 북이스라엘 엘라 왕의 병거 지휘관인데, 그는 엘라 왕를 죽이고 북왕국의 왕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시므리는 지지세력과 군사력이 약했기에, 결국 군지휘관 오므리의 반격을 받고, 7일 천하로 모든 반란이 마무리됩니다. 결국 시므리는 비참한 자살로 생을 마칩니다. 따라서 지금 태후 이세벨은 자신 앞에 선 예후에게 너는 마치 시므리와 같이 될 것이다 조롱하며 예후의 반란을 평가 절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태후의 지위와 권세가 든든한 듯 위에서 아래로 깔보며 당당히 맞섭니다. 하지만 예후는 이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후는 이세벨이 하는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고, 32절 단호하게,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외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데 집중했습니다. 곧, 두어 내시가 예후를 쳐다보았고, 예후의 명령을 따라 그들은 이세벨을 창밖으로 내던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세벨 역시 남편과 아들들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셨습니다. 이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최후였는지, 피가 담과 말 사방에 튀었다고 합니다. 이후 예후가 뒤늦게 그녀를 장사하고자 했을 때, 그녀의 시체는 머리와 손발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를 통해 선포된 말씀 열왕기상 21장 23절 말씀,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 가리켜 말하지 못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죽은 후 시신이 제대로 장사되지 못하거나 짐승에게 훼손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대가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벌이다. 신명기 28장 2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세벨의 최후를 통해 다시 한번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최후까지 복을 내리시고 축복된 장례로 마지막을 인도하신 것을 다윗 왕족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한 다윗 혈통의 왕들이 편안히 왕의 묘실에 안치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최후는 오늘 아합 가문의 사람들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서 축복의 길, 의의 길,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끝이 주님 보시기에 영광스러운 모습이 될 줄 믿습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자꾸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자꾸만 완악해지지 않고, 새 살처럼 부드러워져서,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언젠가 무릎 꿇는 날이 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