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왕하 12:1-21

◎본문: 왕하 12:1-21

◎개요

1-3절 요아스의 통치 도입부

4-16절 요아스의 성전 보수 공사

17-18절 하사엘의 침입

19-21절 요아스의 통치 종결부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아스를 공격한 아람의 다메섹 왕 하사엘은 벤하닷 2세를 죽이고 왕좌에 오른 자입니다. 엘리사는 그가 왕이 되어 북이스라엘을 잔인하게 핍박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북이스라엘의 요람은 길르앗 라못에서 그의 군대와 맞서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예후는 하사엘에게 요단 동편의 온 땅을 빼앗겼습니다. 여호아하스 때에도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 3세기 이스라엘을 계속 학대했었죠. 이제 유다의 요아스도 하사엘의 침략으로 부상당했고, 그 상황에서 신하들에게 암살당합니다. 하사엘은 이때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위기에 몰아넣었으나, 요아스의 예물을 받고 공격을 그만두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생존한 왕, 은혜로 왕이 된 사람 요아스는 7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몸에 뱄을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옆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습니다. 그의 교훈을 받는 동안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말은 거꾸로는 그 이후에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심지어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이 계속되도록 방치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그의 아들 스가랴가 전한 하나님 말씀을 거절하고 도리어 그를 죽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요아스 역시 두 신복의 배신으로 최후를 마감하게 됩니다. 처음과 끝이 다른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타깝게도 시작은 창대한데 끝이 미약한, 용두사미의 모습이죠. 끝까지 신실하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죠.

몇 년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어린 요아스가 지시한 대로 성전 수리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자 요아스는 준엄하게 지적하고 단호하게 이행 지시를 내립니다. 은인이자 스승인 제사장 여호야다마저 제사장들의 부정을 방치하고 성전 수리 공사가 제자리걸음 상태에 빠진 것을 방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요아스는 성전 수리 작업이 바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재정 수급과 집행 절차를 바꿉니다. 성전 헌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하였고, 제사장의 몫은 따로 배려해주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순종했고,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성실하게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요아스의 성전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왕위에 올라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전 보수였고, 직접 나서서 성전세를 걷고, 성전을 수리하고, 성물 마련을 챙겼습니다. 아마 성전을 향한 애착이 남다르긴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6년 동안 숨어 자란 곳이 성전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통치 이념을 천명하고 예배의 회복을 개혁의 출발로 삼았던 요아스였습니다. 그랬기에 성전 공사부터 우선으로 했던 것이죠.

하지만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이고, 충신이고, 개혁 정책을 지도해주었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려 잘못을 눈감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지만 사사로운 인정에 매여서 공적인 일을 그르쳐서는 안되는 것이죠. 악의 동조만 아니라 선의 방조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죠.

갈팡질팡한 요아스의 신앙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아람 왕 하사엘의 침략 시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마땅한데 요아스는 여태 모은 금과 은을 제공하여 하사엘을 물러나게 합니다. 스스로는 잘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대응 태도를 보면 국가의 위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며, 백성들의 영적 위기의 원인이 요아스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기는 뼈아프지만 우리의 수준과 영적 현주소를 알려주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짜 위기는 불신이다. 하나님을 불신한다면, 그것이 정말 위기인 것입니다. 한때 신실했던 믿음이 신실한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 앞에 닥친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그 상황은 우리 자신을 누구라고 말해주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요아스는 처음은 좋았지만 끝은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도 신앙적 성공과 그 뒤에 따르는 위기를 넘지 못하고 추락하는 많은 사람들을 듣고 보기도 합니다. 일평생 온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죠. 위기가 왔다고 해도, 그 위기를 통해서 희망을 잃거나 체념하기보다는 성공적인 인생 마무리를 위해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바르게 보고 분별하여 주님 보시기에 그리고 나 자신이 보아도 마무리가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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