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 13:1-13
◎개요
1-9절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통치
10-13절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통치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모두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와 은혜를 다 받아누리는 시간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9절까지는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통치에 관한 말씀이고 10절부터 13절까지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통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합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여러 전쟁을 치렀고, 아합 이후에는 지속적인 침략이 있었습니다. 아합 당시 벤하닷 2세와의 세 번 전쟁 중 처음 두 전쟁에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전쟁에서는 벤하닷을 처단하여 아람으로부터 장기적인 평화를 얻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벤하닷을 죽이는 대신 그와 조약을 맺었고, 이후 짧은 평화의 시기를 얻게 되었죠. 결국 아합은 세 번째 전쟁인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처참히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아합의 아들 여호람 시대와 예후 왕조 때에도 벤하닷 2세는 계속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예후의 후손들인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시대에는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 3세가 이스라엘을 혹독히 대했죠. 하사엘의 핍박은 이미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서도 예고되었습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 아버지의 길, 더 나아가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자 하나님도 이스라엘에서 멀어지십니다. 아람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을 들어서 심판하시죠. 왜 사람이 사는 사회의 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까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도대체 언제 사람이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군소리없이 잘 순종하면서 살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하죠. 그러면서 세계 역사를 보면, 스스로 자초한 참담한 결과들을 보고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너무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슨 짓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늘 웃는 얼굴로 자신들을 호위해주기를 기다리니 말입니다.
흔히 쓰는 말 중 저 사람은 속도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도 좋으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람의 학대를 못 이겨서 부르짖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원해주시기 때문이죠. 그것이 근본적인 회개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식들의 고통에 눈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분이시죠. 하나님의 기준이 턱없이 높아서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어려운 것인가요? 아니죠.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죄성이 그만큼 깊고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딱 하나 지켜야 했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을 순종함이 어려웠나요? 아니죠. 그냥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열매 말고도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선악과 나무를 안쳐다보면 되는 일이었죠. 죄인된 자녀 또한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시죠. 돌아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문 앞에까지 가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곤경에서 벗어나자 여호아하스와 이스라엘은 곧바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수도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대로 두어 숭배하게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도 다시 아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멸절하게 하시고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군대를 약화시키게 허락하십니다. 여호아하스가 이렇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들 요아스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둘이 각각 23년과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회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 오랜 시간 하나님께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거나 기회가 없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거나 상황을 핑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까지 39년 동안 대를 이어 은혜를 배반하고 악을 행하다가 이스라엘 나라의 존폐를 위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대적의 손에 넘겨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죠.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죄에 대한 성찰이 없이 주어진 구원은 독이 됩니다. 아픔을 통해 주님을 찾고 돌이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감사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악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요아스는 17년 동안의 아버지의 악행과 아람의 학대를 보고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선대의 실패를 보고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며, 은혜를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됩니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는 도구로써 우리 자신을 늘 살피고, 악을 멀리하며, 지혜롭게 쓰임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