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열왕기하 13:14-25

◎본문 : 왕하 13:14-25

◎개요 14-25절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A. 엘리사와 요아스(14-19절)
B. 엘리사의 죽음 (20-21절)
C.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22-25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먼저 선지자 엘리사의 마지막 순간이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누구입니까? 위대한 엘리야의 후계자입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성령 역사를 구해서, 받은 능력으로 예언할 때, 이스라엘과 유다는 모압에 승리하고,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고, 기근에 시달린 사마리아는 넘치는 식량을 받을 것이다 예언하여, 이것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또, 쇠도끼가 물에 뜨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고, 사환의 눈을 열어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지키고, 돌보던 능력의 선지자가 이제 마지막을 앞둔 것입니다.
그러자 14절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내려와서,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외치며 울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란 표현은 엘리사의 죽음을 앞에 두고, 요아스의 뒤늦은 신앙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요아스는 11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은 악한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엘리사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지키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합니다. 또, 7절 그는 아버지 때에 연약한 군사력, 고작 마병 50명, 병거 10대, 보명 만 명만을 받았는데, 이렇게 연약한 이스라엘을 보호해왔던 엘리사의 존재를 깨닫고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을 앞둔 엘리사를 통해, 여전히 긍휼을 베푸십니다. 비록 요아스는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지만, 23절, 여호와께서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세운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엘리사의 마지막 순간에, 돌아온 요아스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비록 늘 넘어지고 때로는 하나님을 잊고 살지만 이렇게 늦게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베푸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마지막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 꼭 은혜와 응답을 받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이렇게 마지막이 아니라, 일찍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더 좋다는 것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15절.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말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자기 손을 왕 위에 얹고 동쪽 창 곧 아람이 쳐들어오는 동쪽을 향해 활을 쏘게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친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18절 엘리사는 왕이 화살들을 집고 땅을 치게 하는데, 요아스가 고작 3번만 땅을 내리치자 선지자 엘리사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왕이 5번을 쳤어야 아람을 완전히 멸절시켰을 것이다. 아쉬워하며, 땅을 내리친 횟수만큼 아람을 칠 것을 예언합니다. 정말 이 예언대로 요아스는 25절에, 벤하닷을 세 번만 무찌르고 성읍들을 회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아스가 좀 더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더 일찍이 하나님 앞에 왔다면, 그는 원수 아람을 19절 말씀대로 멸절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를 뒤늦게 찾은 요아스는 소극적이었고, 뭔가 이해되지 않는 엘리사의 마지막 부탁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평소 믿음이 없었던 요아스의 필연적 모습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믿음의 세계에서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 쌓은 기도의 분량, 믿음의 분량만큼 어떤 시험의 순간이 왔을 때, 행동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믿음생활 잘 하려 할 때, 의문 드는 상황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평소 훈련된 만큼, 믿음만큼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고백할 수도 있고, 요나처럼 다시스로 멀리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목사님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자들을 통해, 혹은 어떤 상황을 통해 도전과 말씀을 주신다면, 깨어있는 만큼 우리는 들릴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이 정말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인지, 경고인지 분별할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올 때, 분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모두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요아스는 25절 자신이 세 번 땅을 친만큼만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이스라엘 회복의 메시지는 앞선 20절 엘리사의 묘에서 죽은 이가 회생한 사건을 통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엘리사 이야기의 마지막인 20절에, 엘리사가 죽어 해가 바뀌고, 장례하는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하는데요. 그들이 모압 도적 떼를 보고 놀라, 시체를 던지고 도망갔다 합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마침 묘실 내 엘리사의 뼈에 닿을 때 회생하여 일어섰다 21절 말하는데요. 마치 뜬금없이 보이는 이 사건에서 우리는 예언의 확실성, 회복의 메시지를 찾게 됩니다. 비록 엘리사가 죽고 1년이나 됐지만, 그 마른 뼈에서 회생시키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은요. 엘리사의 마른 뼈 자체에 능력 있는 것이 아니라, 마른 뼈를 소생시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부활과 회복의 소망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임을 증거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본문 22절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해서, 마치 죽은 자 같은 이스라엘이 반드시 요아스 때에 회복될 것을 우리는 앞선 이 회생 사건을 통해 엿보게 됩니다. 이 회복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도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만약 현재 우리의 삶이 22절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것처럼 죽은 것과 같고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까? 그렇다면 죽은 자를 회생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삶에서 내 경험으로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너무 늦지 않게, 오히려 일찍 나아와 무릎으로 간구하며 응답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앞서 하나님 응답을 경험하는, 하나님 능력의 확실함을 경험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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