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왕하14:1-16

◎본문:왕하14:1-16
◎개요 1-14절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A. 아마샤의 통치 도입부(1-4절) B. 아마샤의 통치(5-14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선지자의 관점에 입각해서 역대 이스라엘 왕들과 남유다 왕들을 평가합니다. 여기서 선지자의 관점이란, 본문 3절처럼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는지, 또 조상 다윗처럼 행동했는지 기준을 갖고 평가하는 시선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분열왕국 시대 남유다 아마샤 왕을 주목하는데요. 3절에서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않고, 또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대로 행했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이렇게 잘한 2가지와 못한 2가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 평가는 결국 개인적 영역과 신앙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남유다 아마샤 왕 이런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먼저 정직히 행했다 에서, 정직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샤르 라는 단어인데, 사람에게 사용될 경우, 정직한 외에 올바른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샤 왕은 개인 인품의 영역에서 하나님 눈에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함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또, 아버지 요아스처럼 정치적 리더로서도 남유다를 부족함이 없이 다스렸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의 차원, 믿음의 영역에서 실패했습니다. 조상 다윗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르진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상숭배지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평가합니다. 그래서 아마샤의 통치 29년 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지도자의 영적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아마샤는 개인적 영역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신앙의 영역에 실패하였고, 그 다스림을 받는 구성원들까지 신앙에서 무너진 채 방치했습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으니까, 백성들도 믿음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결국 이런 리더는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한편, 믿는 우리들도 정치, 경제, 모든 영역에서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바르게 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서 말했습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그렇습니다. 지도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영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리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전대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은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님인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절에 아마샤의 통치 초기, 남유다는 그의 손에 굳게 섰다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통치 초기에 아마샤가 아버지 요아스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대로 다스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6절에 아마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만 죽이고 그 신하들의 자녀들은 율법에 따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확실히 알게 됩니다. 하지만 나라가 점차 든든해지고, 강성해지자 점차 아마샤는 교만해졌습니다. 부전자전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아버지 요아스같이 아들 아마샤도 점차 하나님을 잊고 후반으로 갈 수록 내 힘과 손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세웠다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이 자신감은 7절 말씀에,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했다는 부분에서 확대됩니다. 이제 아마샤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8절 말씀을 보면, 결국 아마샤는 자기 능력을 믿고, 북 이스라엘 요아스에게 무리한 도발을 일으킵니다.
여기엔 사실 명분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25장을 보면, 남유다가 에돔과 전쟁 중일 때 북이스라엘 용병들이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3천 명을 죽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에 이를 만큼 충분히 심각한 사건입니다. 사실 아마샤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신중히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능력과 북이스라엘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쟁보다는, 정치적 거래나 다른 외교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에돔과 전쟁에서 에돔사람 만 명을 죽이고, 셀라 성읍을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에 도취된 자신감이 상황을 오판하게 하고, 10절에 나오는 것처럼 요아스 왕의 만류에도 북이스라엘과 무리한 전쟁으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크게 패배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여호와의 성전,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 사람까지 탈취 당한 후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교만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교만이 왜 무서운 일입니까? 교만은 영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가 모든 결정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만약 아마샤의 주인이 하나님이셨다면,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만 때문에 아마샤는 상황을 오판하고, 애꿎은 백성들이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특별히 6절 말씀 이후로 아마샤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거나 믿음의 선택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평행본문 역대하 기록을 보면,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 후 오히려 에돔의 우상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이에 진노한 여호와는 선지자를 보내 아마샤를 책망하셨지만, 아마샤는 이미 교만해질대로 교만해져서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 아마샤를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이렇게 방치하심으로 벌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자신감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결국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만이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고, 우리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알길 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계속 묵상하는 열왕기서는 수많은 왕들에 대해서 평가할 때, 오직 두 가지의 영역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는가, 그리고 조상 다윗과 같이 행하는가. 다윗은 시편 31편 23절에서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다윗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했다 칭찬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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