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왕하 15:23-38

◎본문: 왕하 15:23-38

◎개요

23-26절 북이스라엘 왕 브가히야의 통치

27-31절 북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

32-38절 유다 왕 요담의 통치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3절부터 26절까지는 북이스라엘 왕 브가히야의 통치에 대한 말씀이고, 27절부터 31절까지는 북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에 대한 말씀, 그리고 32절부터 38절까지는 유다 왕 요담의 통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베가 당시 북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불로도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아닷니라리 3세의 아들로서 앗수르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 베가는 당시 아람의 르신과 손을 잡고 거세져가는 앗수르를 제지하기 위해서 유다와의 동맹이 절실했습니다. 그들은 아하스를 대신해 반앗수르 정책에 동참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유다를 침략했습니다. 아하스는 이에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몇 차례 공격을 통해 아람의 다메섹을 멸망시키고, 북이스라엘의 여러 성읍을 치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앗수르 연대기에는 디글랏 빌레셀이 사마리아만 남기고 북이스라엘의 나머지 땅을 다 점령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왕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끝장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왕위를 쟁취하려고 하고 목표로 삼을 때,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그는 멸망하고 말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왕권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이라 여겼던 것이죠. 자신들이 쟁취한 것이니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말게 됩니다. 지금도 세상의 그 어떤 자리든지, 혹은 정말 어떤 교회들의 어떤 직분이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죠.

본문을 보면, 반란으로 왕권을 빼앗은 베가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침략을 받아 땅을 빼앗기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가장 강력한 경고이죠.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전체가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도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권력은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작은 권력이 더 큰 권력을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실패를 통해 파국을 면하게 해주십니다. 즉 이것은 아프지만 하나님의 자비인 것이죠.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혹한 자비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죠.

유다 왕 요담이 아버지 웃시야처럼 정직히 행했고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는 등 성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던 것이죠. 하나님은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결성한 연합군을 불러 그런 유다를 치게 하시죠.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삶에도 성전과 산당이 공존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공존한다면, 산당이 사라지기 전까지 언제든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실 채찍은 내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북이스라엘 왕에 대해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고 성경은 평가합니다. 우상숭배를 조장하고, 자기 유익과 안정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주님과의 관계보다 자신과 사람의 인정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남유다 왕은 긍정과 부정 평가가 섞여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정직함은 인정받았지만, 산당 제사는 부정 평가를 받았죠. 물론 부정 평가만 받은 자나 요시야처럼 긍정 평가만을 받은 자들도 있지만, 보통은 중간 어디쯤입니다. 어중간한 반쪽짜리 삶이었던 것이죠.

주님께서 왕들에게 강조하신 것은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사는 다윗같은 삶입니다. 명예나 부, 일의 성취나 사람의 인정 이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죠. 그저 일상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며 사는 것, 그 삶에 신실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참 성공적인 삶이죠.

누구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싶어 하죠.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평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주권자이신 창조주의 평가인 것이죠. 우리 하나님은 왕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교우들과 이웃들과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사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 그것이 기준인 것이죠. 그 기준이 우리에게 적용된다면, 우리 또한 그에 준하는 사랑으로 교우들과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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