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열왕기하 17:24-41

◎본문: 왕하 17:24-41

◎개요 24-41절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원인
A. 사마리아의 앗수르 이주민들 (24-34절)
B.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율법(35-41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마지막 왕 호세아가 다스리던, 주전 722년 앗수르 살만에셀의 공격으로 정복당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결국 이방민족에 의해 정복당했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8장에서 이스라엘이 만약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모든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약속된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하여 낼 것이다. 저주 받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거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 모든 말씀을 따를 때는, 예비된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수많은 경고와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씀 지키기에 실패했습니다. 이방민족의 우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결국 솔로몬 때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오늘 본문 호세아 왕 때에 이르러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이스라엘 민족을 앗수르로 끌어가고, 거꾸로 앗수르인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경험한 것처럼, 민족 혼합정책을 펼치는데요. 살만에셀은 이 정책을 통해, 이스라엘 종교와 민족정체성을 뒤섞어,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국 통일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25절 말씀에 사마리아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처음 거주할 때,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 가운데에 보내 몇 사람을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성은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지정학적으로는 교통의 요지이고, 주변 평지보다 100m 높은 해발 440m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따라서 5절 말씀처럼, 이 성읍은 앗수르 군대의 포위를 3년이나 버티게 한 천혜의 요새입니다. 그런데 이 언덕 위 성읍에 갑자기 맹수, 사자들이 나타나, 이주한 앗수르인 몇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앗수르인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흉흉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사마리아 신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사자들이 물어 죽일 것이다.’ 결국 이 소문은 지방 관리를 넘어 제국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까지 들어갔습니다. ‘앗수르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몰라, 사자들이 물어 죽인다’는 소식에 앗수르 왕은 놀라 27-28절에, 그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을 보내 그 땅 신의 법을 가르치게 명했습니다. 만약 앗수르인들이 겁에 질려, 정복한 사마리아에 아무도 가지 않으면, 애써 얻은 사마리아 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방민족 앗수르로 하여금 이렇게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 명령을 지키게 하실까요? 먼저, 레위기 26장 22절에서 사람이 들짐승에게 상해를 입는 일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백성에게 내리는 저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 역설적으로,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뜻을 보게 됩니다. 만약 여기서 앗수르 이방인들이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면, 그들은 사자밥의 저주대신, 하나님의 민족이 되고, 복을 얻을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사야서가 기록된 주전 739년에,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이사야 56장 6-7절을 통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사마리아 제사장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쳤음에도, 각 민족은 자기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산당들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고… 수많은 우상들을 함께 자기 주변에 함께 두었습니다. 따라서, 33절에,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그 민족의 풍습대로 자기 신들도 섬겼다 열왕기 기자는 지적합니다.
이것이 정말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이 경외라는 단어는 정말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그래서 35-39절에,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경외하라고 앗수르인들에게 열왕기 기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이방 여러 민족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아로새긴 우상을 함께 섬기는데, 그 자자손손이 조상처럼 오늘까지 행한다고 41절에 말씀합니다. 결국 혼합주의의 늪에서 앗수르 이방민족들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 역시 앗수르처럼 이방민족이란 점입니다. 선택된 이스라엘에 접붙힘 받은 이방인입니다. 주님 은혜로, 복음이 들어와 하나님을 만나게 된 민족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앗수르인처럼 우상 신들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미신이나 재물일 수 있습니다. 내 욕심, 야망이라는 자아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내 자녀, 내 가정, 직장, 명예 등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섬기다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후순위에 두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만약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물질을 같이 섬기고, 자녀 교육을 우선하고, 성공주의, 성장주의를 함께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 명하십니다. 본문 38-39절입니다.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아멘.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온갖 우상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쾌락, 나의 권리와 욕심이 우상이 된 오늘 이 시대에 다시 하나님만 섬기며, 절제와 온유, 오래참음, 자비, 양선의 열매를 회복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거룩을 되찾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거룩히히 하나님만 섬기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를 다시 축복하시고, 영광성을 회복시켜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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