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열왕기하 18:1-16

◎본문 : 열왕기하18:1-16

◎개요 1-16절 유다 왕 히스기야의 통치
    A. 히스기야의 통치와 평가(1-8절)
    B. 북이스라엘의 멸망(9-12절)
    C. 산헤립의 침략과 히스기야의 대응(13-16절)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개혁이라는 단어를 종종 듣습니다. 개혁이 무엇입니까? 한자말로 가죽을 고친다는 뜻인데, 고대시대에 가죽은, 가죽을 입은 자의 신분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그 가죽옷을 고쳐 바꾸게 되면, 다른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오늘날 개혁의 어원입니다. 하지만 개혁이 쉬운 일입니까? 역사상 개혁에 성공한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개혁에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합니다. 그는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개혁에 성공했을까요?
사실 히스기야의 가정사를 살펴보면, 그는 개혁에 성공할법한 인물로 보이진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 못하고,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나무 아래, 산당에서 분향, 제사를 드렸습니다. 심지어 이방 사람들처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한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3절 말씀에, 히스기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아버지와는 다른 길, 신앙의 올바른 길을 택하여 걸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계기로, 그가 믿음을 택해 바르게 걸었는지 정확히 나타나지 않지만, 평행본문 역대하 31장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이 주신 선한 믿음과 온전한 율법을 따라, 바른 길을 택해서 걸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혹시 내가 신앙 생활하는데, 좋지 않은 가정배경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은혜 가운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처럼 신앙의 토양이 좋지 못한 곳에서도 믿음이 승리하는 역사를 보이실 줄 믿습니다.

    다시 3절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다윗의 모든 행위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말합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특별히 모세가 만든 놋뱀, 이스라엘 자손이 오랜 시간 숭배해 온 놋뱀을 부수고, 이것은 그저 느후스단, 쇳조각이다. 일컬었습니다. 사실 이 놋뱀에 사연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만든 이 놋뱀을 보고, 그들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은 놋뱀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때까지 수 백년간 놋뱀을 신성히 여기고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된 적폐, 우상을 과감히 부수고, 그저 놋뱀은 쇳조각에 불과하다 일컬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전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죄 된 우상이라면, 사람과 전통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개혁하였습니다.

    또, 산당의 경우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사실 산당들은 하나님께 칭찬받았던 선대 왕들도 차마 건드리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산당 제사는 사사시대부터 내려온 가나안의 관습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민심이라는 정치적 계산 아래, 선대 왕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산당제사도 허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러한 산당도 주저 없이 제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5절 말씀에 평가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보며 우리 삶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사람과 관습, 전통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불신자에게 전도하는데 주저하고, 때로는 007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 때도 있습니다. 혹시 남들이 날 안 좋게 볼꺼야, 왠지 불이익을 당할꺼야 생각하며 소심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순간 이 말씀처럼 하나님 여호와만 굳게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히스기야처럼 우리를 사명자로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사명을 더욱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결코 무너지지 않는 줄 믿습니다.

    이어서 6절 말씀에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말씀하는데요. 여기서 연합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다바크로 남녀 간의 결혼을 통한 연합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신앙생활에서 쓰일 때는, 신실함, 충성, 친밀감으로 사용되는데요.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습니까? 먼저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믿음이 공고하게 되고요. 마지막으로 모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6절 말씀에서 신앙생활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신앙의 첫걸음이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말씀을 지키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계명과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결국에는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주의 말씀입니다. 잠언 16:20입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주의하는 자, 주목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가 그러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그가 계명을 지켰더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형통의 복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셨습니다. 대내적으로는 히스기야가 오랜 적폐를 개혁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형통의 축복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또, 대외적으로 히스기야는 주님 주신 담대함으로, 앗수르 왕을 배반하여 섬기지 않고 8절에 히스기야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다 말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블레셋의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기까지라는 표현은 외곽 먼 곳의 사람이 망을 보는 망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견고한 성에 이르기까지, 넓은 블레셋의 영토를 수복했다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 때 이스라엘을 오랜 시간 괴롭혀온 블레셋을 크게 이기고 넓은 영토를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스기야가 개혁에 성공하여 형통할 수 있었던 원리를 배웠습니다.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오래된 우상, 잘못된 관습을 주저하지 말고 깨뜨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믿음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형통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