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왕하 20:1-11

◎본문: 왕하 20:1-11

◎개요

1-3절 병든 히스기야와 기도

4-7절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8-11절 하나님이 주신 치유의 징표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는 1절부터 3절까지는 병든 히스기야와 기도에 관한 말씀이고, 4절부터 7절까지는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말씀이며, 8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이 주신 치유의 징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히스기야의 상처에 놓은 무화과 반죽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진단용으로서, 반죽을 발라 피부의 반응을 본 것을 추정됩니다.

히스기야가 젊은 나이에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앗수르와의 전쟁 전의 일이며 경건하게 살고 우상을 깨뜨린 개혁을 한 이후입니다. 경건한 삶이 늘 평안한 삶은 아닙니다. 이것은 착각이죠.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이 땅에서 완전함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르게 알아야 삶의 실제에 덜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난데없이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신병 정리를 지시합니다. 히스기야는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죠. 심히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진실하게 그리고 전심으로 행하려 했던 지나온 자신의 삶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뒤에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자신의 죽음이 유다에 더욱 큰 위기를 가져올 것까지 염려했던 것입니다. 더 살게 해달라고 구할 만큼, 더 할 일이 있다고 할 만큼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님 앞에 충분한 인생인가를 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통곡을 들으셨습니다. 그를 낫게 하시고 15년을 더 살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 응답이 전적으로 히스기야의 신실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결정이고, 또 다윗에게 하신 언약에 신실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내 쪽에서 이유가 차고 넘쳐도 하나님 쪽에서의 이유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죠. 히스기야는 사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성도의 경건을 인정하지만, 모든 일은 그분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면 우리의 병이나 아픔도 나을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믿음과 경건의 양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치유는 주님의 주권과 은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 더 깊이 머무는 것이 맞습니다. 성도의 삶은 이 땅에서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 영원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 3일 만에 회복과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 히스기야가 요구한 징표를 주십니다. 여호수아 시대 때, 기브온에 태양이 하루를 머물러 이스라엘이 온전한 승리를 누리게 해주셨듯이, 그림자가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 해달라는 히스기야의 요청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시간의 주인이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우리 삶의 귀중함과 주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주님께서 스스로 증명해주십니다. 단지 우리가 못 듣고 못 볼 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귀한지,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분이신지를 알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물론 히스기야의 경건과 기도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치유가 주님의 은혜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삶이 어려울 때 기도해야 하지만, 결과를 얻어내려고 주님의 뜻을 마치 조종할 것처럼 덤벼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성도에게 어려움과 평안 모두 감사의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늘 기대하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늘 주님 안에,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을 믿고, 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는 저와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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