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왕하 23:21-30
◎ 제목: 요시야가 보여준 개혁과 회개
1. 본문개요 및 관찰
a. 21-27절: 요시야의 개혁(2)
1) 21-23절: 유월절을 지킴
2) 24-27절: 요시야의 온전한 순종
c. 28-30절: 요시야의 통치 종결부
2. 적용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과연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에 대한 완전한 죽음이고, 과거의 죄 된 것과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그래서 갈 2:20절에 바울 사도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으로 묘사한 겁니다. 그리고 심지어 ‘나는 없고 내 안에 예수가 사는 것’이라 표현할 만큼, 나의 옛 자아는 완전히 죽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사건이라는 말이지요.
‘새로운 나로의 재탄생’, 그것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의 참된 변화입니다. 물론 과정이 필요하고, 계기가 필요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완성된 구원’의 상태는 아닙니다. 성화의 과정에 있기에 유혹도 있고, 나의 옛 자아의 반발 또한 매우 심한 것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요시아의 회개와 개혁’을 통해 ‘참된 변화’는 있으며, 우리도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는 삶을 살아드려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요시아는 모든 백성을 향하여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열왕기 본문에는 이 유월절을 지키는 부분을 세 절로 요약하여 보여주지만, 역대기는 역대하 35:1-19까지, 무려 열 아홉 절에 걸쳐서 상세하게 이 내용을 다룹니다. 유월절은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요시야가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언약책’을 발견하였고,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켜야겠다는 결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록된 대로 제1월 제14일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후 7일 동안 무교절을 지킵니다. 이렇게 요시아의 명령에 의해 지켜진 유월절에 대하여 22절은 ‘사사 시대 이후부터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번 유월절과 같이 왕의 주도와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협력 아래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가 함께 무수한 예물을 드리며 온전하게 지킨 사례가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말씀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광야에서 제대로 지키지 못한 유월절을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호수아 시대에 온전하게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이후 처음으로 요시아는 율법이 명한 대로 유월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는 실로 충격입니다. 그만큼 사사 시대부터 왕정 시대를 잇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그야 말로 ‘불순종’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역사인 셈입니다. 이러한 불순종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말씀의 부재’입니다. 말씀을 얼마나 철저히 알고 지켜야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에 푹 젖어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에 젖어 있는 삶은 삶의 어떤 부분을 찔러도 말씀이 흘러나올 만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뜻합니다. 물리적으로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사실 매일 5장씩 읽는 것도 감질맛 납니다. 매일 성경을 10-20장 이상씩 읽어가야 말씀 전체의 맥이 잡히고, 깨끗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이 ‘샤워’ 한 듯 깨끗해 질수 있습니다. 더욱 말씀 통독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말씀 전체를 꿸 수 있는 ‘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양육 과정입니다. 양육 과정을 통해서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배워야 만, 통독으로 열심히 읽은 말씀을 꿸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묵상훈련’을 해야 합니다. 새벽 기도 본문이 ‘매일성경’이라는 큐티 잡지의 정해진 본문을 따라 진행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목회자들이 여러분에게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설교’ 말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읽고 묵상하여, 그 가운데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는 일을 매일 반복해야 합니다. 그것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내면화 하여 내 삶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말씀에 깊이 젖어 있어야만 내 삶에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세워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8-30은 요시야의 죽음과 통치의 종결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시야는 개혁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 않는 신접한 자, 점쟁이, 드라빔과 우상 등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였습니다. 철저히 율법책이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의 이러한 개혁도 유다를 향한 심판 계획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와 개혁’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유다 백성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완악해 졌고,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상황을 아셨습니다.
요시야는 이집트 왕 느고 2세와 맞서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의로운 왕 요시야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배려인지도 모릅니다. 아깝다고 할 만하지만, 도리어 유다의 최후를 보지 않은 그의 이른 죽음이 오히려 평안히 장사될 축복이라 여길 만큼 유다에게는 혹독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이렇게 대우해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5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는 철저하게 율법책에 나타난 대로 철저히 이루려 했습니다. 그야말로 ‘단순하고 지극하고 일관된 마음’으로 율법을 남김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런 왕이 요시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진정으로 필요한 믿음은 ‘이해타산을 넘어서는 믿음’입니다.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순종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기대하시는 바입니다. 요시야가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전형이었다면, 이제 저와 여러분에게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종’의 전형을 보기 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철저하게 읽고 묵상하여 내면화 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