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목사 / 왕하 24:8-25:7

◎본문: 왕하 24:8-25:7

◎개요

24:8-17절 유다 왕 여호야긴의 통치

24:18-21절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통치

25:1-7절 예루살렘의 함락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4장 8절부터 17절까지는 유다 왕 여호야긴의 통치에 대한 말씀이고, 18절부터 21절까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통치에 대한 말씀이며, 25장 1절부터 7절까지는 예루살렘의 함락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벨론 연대기에 따르면 주전 599년, 598년 기슬르월, 9월, 양력으로 12월에 느부갓네살은 팔레스타인 동부의 아람 성읍들을 쳤습니다. 이 시기에 여호야김의 배반에 대한 응징으로 느부갓네살이 연합군을 유다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1년 후 기슬르월, 양력 12월에 느부갓네살은 아람과 팔레스타인을 원정하면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여호야긴은 양력 12월 초에 왕이 된 것으로 계산됩니다. 느부갓네살은 그 후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여호야긴은 아달월 2일, 양력 3월 중순에 항복하게 되죠. 그는 바벨론에 투옥되지만, 주전 561년에 풀려납니다. 이후 시드기야 제9년, 주전 588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다시 포위했고, 2년뒤 시드기야 제11년에 성을 함락함으로써 유다는 공식적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실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윗 언약과 성전이 영원하리라는 유다의 기대를 꺾는 날이 온 것이죠. 하나님이 허락하신 순간 아무도 바벨론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야긴과 신하들은 순순히 항복하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내주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되었죠. 예루살렘 백성 가운데 비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남은 자 없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특히 용감하여 싸움에 나설 만한 자들을 잡아감으로써 유다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참담하지만 수용해야 합니다. 자초했기 때문이죠. 심판을 당한 후에야 희망이 있습니다. 심판을 면제받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심판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되는 것이 은혜인 것이죠.

시드기야는 끝까지 심판을 거부합니다. 그것을 바벨론을 향한 배반으로 표현합니다. 세상에서는 용감하다고 칭송할지 몰라도 하나님을 무시한 만용인 것이죠. 선지자의 경고는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른 불신앙을 보여줍니다. 사실 하나님보다 애굽을 통해서 반전을 모색하려고 했지만 애굽도 이익이 없는 전쟁에 희생을 각오할 만큼 유다의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약 2년 정도의 포위 끝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됩니다. 그 와중에 도망하는 시드기야였죠. 자신이 자초한 일에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힌 시드기야는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후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로 결박당한 채 짐승처럼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유다는 길고 긴 흑암의 시기로, 노예의 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존엄한 자유인의 축복을 외면했으니 이제 비참한 짐승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옛날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은 축복을 위한 걸음이었지만, 바벨론으로 들어간 것은 심판을 위한 걸음입니다. 하지만 둘 모두 하나님의 새창조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니 유배의 세월, 광야의 세월을 믿음으로 수납해야 하는 것이죠.

심판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납해야만 하는 것이죠. 반항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부해서도 안되죠. 할 만큼 했다고 해서도 안됩니다. 스스로 구원을 모색하거나 생존을 도모하면 안됩니다. 심판을 대하는 그릇된 태도를 시드기야에게서, 바른 태도를 여호야긴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끝까지 심판을 거부했습니다. 반면 여호야긴과 신하들은 순순히 항복하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내주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된 것이죠. 하나님께서 항복하라고 하면 항복해야 하는 것이 순종이고, 대항하라고 하면 대항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뜻을 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임무인 것이죠. 때로는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순종을 요구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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