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애가 1:1-11
◎개요
1-4절 적막한 도시의 슬픔.
A. 퇴락한 도시의 눈물(1-2절, 알렙 – 베트)
B. 텅 빈 도시 시온(3-4절, 김멜-달렛)
5-7절 조롱거리가 된 시온의 영광(헤-바브-자인)
8-11절 위로받지 못하는 도시를 위한 기도
A. 예루살렘의 죄로 인한 조롱(8-9ab절, 헤트-테트)
B. 여호와여, 나의 환난을 보소서(9c-11절, 요드-카프)
◎본문연구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지난 열왕기하 마지막 남유다의 멸망으로 어느덧 열왕기서 묵상이 끝나고요. 이제 그 배경이 이어지는 예레미야애가를 묵상합니다. 예레미야애가는 한 때 영화로웠던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다가 멸망한 비참한 현실 가운데, 예레미야가 한탄하여 노래한 시이자 노래입니다. 이미 예레미야애가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슬플 애, 노래 가의 합성어를 통해, 애가가 슬픈 노래란 의미임을 보게 되는데요. 오늘 우리가 묵상한 1장 전반부는 예루살렘 멸망 직후 황폐한 현실에 대해 시인이 묘사하는 시입니다.
먼저, 1-4절은 적막한 도시의 슬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시인은 첫마디부터 슬프다 탄식하며 1절에서 말합니다. 열국 중에 크던 자, 열방 중에 공주였던 예루살렘이 이제 과부, 강제 노동하는 자로 격하된 것입니다. 특별히 2절 말씀에 한 때 예루살렘과 사랑하는 자들이나 친구들로 표현된 자들은, 과거 이스라엘과 동맹 맺고 정치, 외교적 이득을 꾀한 이집트와 이웃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과거 유다의 친구였지만,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합니다. 이미 예루살렘 백성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과거 찬란했던 예루살렘 영광은 다 사라지고, 3절에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중에 사로잡혔다고 한탄합니다. 심지어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열국에서, 궁지에 몰린 유다를 뒤따라 잡았다 표현합니다. 비참해도 너무도 비참한 예루살렘의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출애굽 사건을 역전시킨 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모압 언약에 따르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 숭배하며, 불순종할 때, “땅이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토해내고, 대적이 이스라엘을 쫒아내는 저주가 내릴 것이라” 하나님이 이미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저주를 받고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한다고 4절에서 노래하는데요. 여성으로 인격화된 도시처럼, 도로도 사람같이 슬퍼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한편, 이 슬픔의 이유는 절기를 지키려고 나아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 예배하는 자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성문도 드나드는 자가 없어 적막하고 곤고함,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어서 5절에 보면, 시인 예레미야는 누가 이토록 시온을 절망하게 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대적들이 우두머리가 되고, 시온의 원수들이 형통한 것은 바로 시온의 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죄 때문에 결국 시온을 곤고하게 하셨다 말합니다. 그래서 이 시를 듣는 청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시려고,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온이 겪는 고통의 원인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대한 많은 죄였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죄를 뜻하는 히브리어 원어 페샤는 반역을 의미하는데, 이 반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 맺은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역 중 가장 문제가 된 이스라엘의 반역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국과 동맹으로 안정을 추구한 것 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한 행위라고 예레미야 10장에서 시인이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수많은 기회들과 시간을 주셨습니다. 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지속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 중에 선택하라”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방 신들이 주는 재물의 유혹과 음란에 계속 빠졌습니다.
결국 이 반역죄의 결과로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곧 성전이 있는 시온에서, 친히 저주를 내리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도성이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하나님이 친히 시온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따라서 시온의 지도자들은 6절 말씀에 무능하게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저주를 이제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들도 오늘 이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신앙의 반면교사 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오늘 선택할 것은 복과 생명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저주와 사망의 길은 우상숭배와 세상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복과 생명의 길은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는 복과 생명의 길을 매 순간 택하며 나아가는 성도님들이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8-11절 말씀을 보면, 시인의 탄식이 중보적 기도로 변합니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또 11절에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나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시인의 탄식이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단지 끝없는 탄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기도,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환란이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유다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불결한 삶에 빠진 민족의 죄를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죄로 회개하며 적극적으로 중보적인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유다를 괴롭히는 이방인들을 너무 오래 두지 않으시길, 하나님의 공의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나라와 한국교회에 대한 탄식이 적극적인 기도로 변하길 소망합니다. 어려운 현실 속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요청하는 기도가 우리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 우리나라와 한국 기독교의 영광성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