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애 3:19-39
◎개요
19-21절 쓰디쓴 삶에서 피는 희망
22-24절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
25-27절 잠잠히 기다리는 구원
28-30절 겸손한 삶의 희망
31-33절 근심하게 하시나 그 큰 주님의 사랑
34-36절 약자의 억울함을 보시는 주님
37-39절 악함도 선함도 가장 높으신 이에 따라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3장은 1절부터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이어서 진행되고 있는데, 오늘은 19절부터 3행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먼저 19절부터 21절까지 3행은 쓰디쓴 삶에서 피는 희망을 노래하며, 22절부터 24절까지는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성실하심, 그리고 25절부터 27절까지는 잠잠히 기다리는 구원을, 28절부터 30절까지는 겸손한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31절부터 33절까지는 근심하게 하시나 그 큰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34절부터 36절까지는 약자의 억울함을 보시는 주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7절부터 39절까지는 악함도 선함도 가장 높으신 이에 따라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혹한 고난으로 불평하던 예레미야는 처음에 고난 자체에 집중했지만, 이제 절망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전통적인 신앙의 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끝없는 인자하심을 노래하면서 비탄에 빠진 자를 압제하지 않으시고, 정의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인 ‘가장 높으신 이’를 부르며 정의를 세우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처음에 가졌던 원망과 불평은 희망으로 바뀌고 예레미야는 어느 쪽도 버리지 않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주목할 것은 ‘나’라는 1인칭 대명사로 시작한 예레미야의 고통이 어느덧 지혜의 영감을 받아 인간의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되고 전환됩니다.
예레미야는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고난을 기억하며 낙심하였지만, 동시에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회복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애정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끝이 없으시며, 아침마다 새롭게 그리고 신실하게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과 강대국들을 기업으로 삼은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시면,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어도 그분만이 전부이고, 기대를 가져야 할 유일한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심판은 있어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획은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죄로 인해 당한 수욕을 마땅한 것을 여기고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와 긍휼에 기대어 구원을 소망하는 자를 통해 다시 그 나라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잠자코 심판을 감내하는 것이 믿음이죠. 하나님의 역전의 역사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희망을 현실이 되게 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겸손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우리의 고생은 결국 다 내가 자초한 것입니다. 죗값을 받으면서 우리는 왜 불평하십니까? 심판하실 때는 묵묵히 그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그렇게 고생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도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근심할 때 주님은 더 근심하시고 우리가 아파할 때 주님은 더 아파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본심이죠. 바벨론의 도를 넘은 악행을 주님은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이 있고 불의한 승자인 바벨론에게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악인의 번성을 부러워하지도, 추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심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넘어서 영원한 동행을 바라고 계십니다. 징계는 훈육을 위함인 것이죠. 인자와 긍휼로 징계를 지나게 하시고 때에 맞게 구원을 예비하십니다. 고통 가운데 눈을 들어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잠잠히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리만큼 크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환난도, 핍박도, 고난도,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진노 중에도 긍휼과 자비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고, 영원토록 버리지 못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앞에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이 자녀로서 합당한 자세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항상 아버지는 자녀들을 최우선으로 위하심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