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애 3:40-54
◎ 제목: 여호와께 돌아가자
1. 본문개요 및 관찰
a. 40-42절: 여호와께 듣고 돌아가자
b. 43-45절: 우리의 반역과 하나님의 진노
c. 46-48절: 두려움과 멸망 속에서 흐르는 눈물
d. 49-51절: 여호와가 돌아보실 때까지
e. 52-54절: 적의 사냥감이 되어 물의 혼돈 속으로
2. 적용
대표적인 ‘영성 학자’인 리차드 포스터는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비극은 피상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피상성은 쉽게 이야기하면 ‘두루뭉슬’한 걸 말합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탄 듯’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피상적인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인을 ‘종교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우리의 예배도, 기도도 ‘종교적 범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안에서 움직일 뿐 깊이 뿌리내리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겉돌게 될 수밖에 없고,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예레미야는 멸망해 가는 남 유다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조사한다는 것은 ‘자세히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면밀하게 수색하듯, 그리고 탐정처럼 찾아내라는 뜻입니다. 즉, 철저한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참회와 함께 여호와께 철저하게 돌아가자는 취지의 요청입니다. 그러면서 41절에 ‘우리의 마음과 손을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들자’고 말하는 겁니다.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돌아보니 기억나는 것은 죄 뿐입니다. 남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돌아셨습니다. 그 결과 42-43절에 남유다의 범죄함과 반역함을 하나님은 사하지 않으셨고 진노로 하나님 자신을 가려버리셨다는 겁니다. 마치 먹잇감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냥개’처럼 우리를 추격하여 죽이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저지른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말 저 말 주저리주저리 하지 말고, 더는 말 보태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돌아가는 것만이 살길인 겁니다. 혹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살려주실 보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길 밖에는 없으니 그래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더 이상은 거래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더는 계산하지 말자고 합니다. 마음을 열고 하늘의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어떤 방법으로 감사해야 합니까? 스스로를 자세히 조사하고 살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지독하게 게으르고 이기적인 악함을 소유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악함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연약함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올바르게 감사를 올려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가 성찰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아시고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하시고 품어주신 겁니다. 그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고 있다면 숨김없이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지점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땅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 대할 때에는 100% 자신을 다 까발려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선 안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우리의 밑바닥을 다 뒤집어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발견되는 숨겨진 죄악까지도 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만 우리는 깊이 있는, 그리고 참 된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6-54절은 이방의 나라들에 의해 유린 당하는 남 유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됩니다. 46절에 모든 원수들이 자신들을 향하여 입을 벌린다고 합니다. 47절에는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했답니다. 52절에서는 원수들이 이유 없이 새처럼 사냥한다고 합니다. 53절에는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원수들이 돌을 던진답니다. 54절에 스스로 말하기를 ‘이제는 멸절되었구나, 끝이구나!’라는 외침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결국 지금 당하는 이 고통은 주님이 심판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45절에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다.’고 말하면서 이 모든 고통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지금의 이 고통이 단순히 제국들 사이의 패권 다툼에서 희생자가 된 것이라고, 지도자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남탓 하거나 어쩔 수 없어 지금 이 지경이 되었다는 투로 말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못했고,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고 처절하게 고백하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치를 당했고 쓰레기와 오물같이 되었고, 두려움과 함정과 폐허 속에 살아가게 되었다고 인정하자고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니, 그 귀한 사랑을 몰라 봤으니,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인지 처절하게 마음에 새기자고 말합니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지만,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후회하고 소용없음을 직시하자고 예레미야는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 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반복해야 하는 것은 두 손 높이 들고 미련 없이 남김없이 항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할 태도와 자세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왕이신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남아 있고,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자꾸만 다른 핑계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왕으로, 진정한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옳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매 순간 주님 앞에 보여 드려야 할 태도임을 꼭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새벽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음을, 긍휼히 여김 받을 것임을 마음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그 분 앞으로 돌아가 손을 들고 통회하는 이를 결코 거절하거나 외면치 않으십니다. 구원 받은 이들은 매 순간 자신에게 절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 스스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매 순간 인정할 때에만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이기셨기에 실패한 우리도 여전히 끌어안으시고 붙드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늘 철저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