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애 5:1-10


◎ 본문: 애 5:1-10
◎ 제목: 긍휼을 구하는 기도


1. 본문개요 및 관찰
    a. 1절: 오, 주님! 우리를 기억하소서
    b. 2-5절: 기진맥진하여 쉼 없는 삶
    c. 6-7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의 범죄
    d. 8절: 종들에게 지배받는 상황
    e. 9-10절: 극심한 굶주림

2. 적용
    이 세상에 어떠한 이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약하고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그 누구도 설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성숙한 신앙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바로 참으로 성숙된 신앙이라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본문은 애가의 마지막 장입니다. 1절은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절박한 하나님을 향한 요청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겪은 것을 기억해 주시고, 이 치욕을 살펴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예레미야가 이 애가를 부르는 상황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고, 나라의 운명이 기울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백성들의 편을 들면서 주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계획’은 변함없이 이루어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고, 이 민족을 통해 한 나라를 이루시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러하기에 그 하나님의 계획에 잇대어 심판의 과정 속에서 혹 주께 돌아오는 자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항상 가지고 계시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인생으로 하여금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다름 아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울부짖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기도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예루살렘은 땅도, 집도, 아비나 남편도 잃어버린 고아와 과부같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2-3절에 묘사된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자기 기업으로 삼기를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4-5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왜 은을 주고 물을 마셔야 하고, 값을 주고 나무를 가져와야 하며, 우리를 뒤쫓는 자들에 의해 목이 눌려야 합니까?

    그 이유가 6절에 나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아닌 애굽과 손을 잡고 앗수르와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배 불리려고 말이지요. 왜 애굽과 앗수르와 손을 잡은 것이 문제가 됩니까? 그들과 손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목이 곧고 교만한 자기 백성의 목에 멍에를 메어 그 교만을 꺾으려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아 볼 것을 예레미야애가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냥 ‘매일성경’이라는 큐티 교재를 따라서 새벽기도 본문이 정해지고 있다는 식으로 그냥 미지근하게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 예레미야애가의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려 하시는지 귀 기울여야 합니다.

    혹 내 삶의 일상은 무고합니까? 어려움은 없습니까? 무사합니까? 혹시 무언가 어그러져 있고, 말썽을 부리고 있고, 일상에 평안이 없으십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오늘 말씀은 무엇을 점검해 보라고 저와 여러분에게 요청하고 있는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 내 일상이 하나님 중심으로 질서가 잘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바르게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일상의 엉킨 실태래가 풀릴 단서를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린 유다는 갈대아인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7절에 ‘종들이 우리를 지배했다.’는 표현은 바벨론에 의해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굴욕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그 결과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9절에 광야까지 나가서도 목숨을 걸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10절은 영양 결핍으로 말미암아 얼굴은 시커멓게 변했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보다 열강을 더 의지했던 자신의 조상들의 죄와 그 결과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여 더욱 큰 악을 행한 자신들의 모습 때문이라는 반성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들의 일상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주어진 거룩한 안식이 사라지고, 노예가 되어 갈 바를 모르는 안타까움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나요?두 마음을 품으면 더 많이 가질 줄 알았는데, 결국 ‘탐욕’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거하실 수 없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돌보실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는데 언약을 파기한 어리석은 유다는 광야에서 목숨을 걸고 음식을 구해야 하는 것처럼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도 그러하지는 않습니까?

    이 새벽에 다시 한 번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심판은 아픕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심판조차도 영원한 왕 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우리는 심판 중에도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까?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범죄 한 다윗이었지만 정직하게 통회하고 자복할 때에 비록 징계는 있었으나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벌인 베드로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친히 갈릴리로 그를 찾아가 주셨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거절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를 용납해 주실 것입니다. 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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