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애 5:11-22
◎개요
11-14절 공동체의 참담하고 극단적인 현실
15-16절 죄에 대한 고백
17-18절 황폐해진 시온산
19-22절 절규하며 구원을 호소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1절부터 14절까지는 공동체의 참담하고 극단적인 현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15절부터 16절까지는 죄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17절부터 18절까지는 황폐해진 시온산을 그리고 19절부터 22절까지는 절규하며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공동체적인 관점의 합창과도 같은 애가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십니다. 죄의 고백과 황폐해진 시온에 대한 비통함을 드러냅니다. 극단적 현실로 인한 고난은 궁극적으로 극복되어야 하고 회복되어야 하기에 마지막 호소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켜 구하시길 바라는 요청과 우리가 돌아가겠다는 맹세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응답도 없이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고통의 진실이 담긴 것으로서 시편의 탄식시와 욥의 언어같은 문학적 줄기와 결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로도 기독교 역사 전체에 걸친 특이성 중 하나이죠.
본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떠난 예루살렘 시온에서 샬롬이 사라졌습니다. 약한 자들은 물론이고 지도자들도,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젊은이는 물론이고 노인들도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샬롬이 사라진 것이죠. 아무도 심판 앞에서 자비를 얻지 못합니다. 짓밟히고 매달려 죽고 천대를 받습니다. 힘겨운 노동에 지치고 비틀거립니다. 어른들은 어른 노릇을 못하고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의 입에서는 노래가 그쳤습니다. 희망이 없고 웃을 일이 없고 우울합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원래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찌 살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버렸고 외면했습니다. 아니 없는 존재처럼 대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희망을 즐겁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백성들을 대표하여 선지자는 하나님께 춤이 통곡으로 바뀐 현실과 즐거움이 사라진 현실,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이 떨어진 현실을 토로하며 이 모든 원인이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실토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인정합니다. 이 죄악 때문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우상을 숭배했고, 우상의 나라를 의지했습니다. 순례자들이 가득하던 성전이 여우만 가득한 황량한 곳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자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회개이죠. 핑계하지 않고 이유를 대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죄 때문에 당한 일임을 시인한다는 것은 이 모든 심판이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심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하나님의 통치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옛 영광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버리셨느냐라는 질문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주님이 돌아오시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이 먼저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14절에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무너진 시온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갈망입니다. 거룩한 도성이 다시 견고하게 쌓이고 성문 곁에는 은발의 노인들이 재판하며 성을 지혜로 경영하는 회복의 날을 꿈꿉니다. 여호와에게 돌아갈 때만이 일어나는 일인 것이죠. 훗날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게 되죠.
이어서 14절 하반절에 청년들은 다시 노래를 하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13절에 맷돌을 지는 청년들과 나무를 지는 아이들이 노래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는 안식으로부터 나옵니다. 영원한 왕과 그의 백성으로 언약 된 상태에서 부를 수 있는 찬미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이들이 찬미하는 것이죠. 영원한 안식 안에서 샬롬의 왕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에서 스바냐의 하나님은 춤추시는 하나님이시죠. 그의 백성을 바라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추십니다. 참된 왕께 돌아갈 때 비로소 슬픔에 짓눌린 백성들이 기쁨으로 춤추게 될 것입니다. 피곤하여 지친 이들이 기쁨으로 춤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춤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사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옛적, 처음의 시작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노인과 청년과 아이들이 왕께 나아가 삼위 하나님과 하나되어 기쁨의 춤을 추게 될 그날에 애가가 아닌 사랑의 노래, 아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씻겨주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