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4:1-16
◎개요
1-5절 거짓 가르침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해
A. 거짓 가르침의 특징(1-3a절)
B. 거짓 가르침에 대한 교정(3b-5절)
6-16절 디모데의 경건과 사역에 대해
A. 디모데의 역할에 대해(6절)
B. 디모데 개인을 향한 명령(7-10절)
C. 디모데의 공적 사역에 대한 명령(11-16절)
◎본문연구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20세기 후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생전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그는 이렇게 연습과 훈련을 중시하는 지휘자,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그래서 언론사 뉴욕타임즈는 1990년 그의 부고 시,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재능 있고 성공한 음악가였다”라고 평을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을 통해 무엇을 묵상합니까? 훈련의 가치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누구나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자신을 연단하고 훈련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렇게 훈련, 연단하지 않으면, 스스로 알게 되고, 곧 가까운 사람 그리고 주변사람 모두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오늘 본문 4장 말씀을 묵상할 때, 믿는 우리는 무엇보다 경건을 훈련할 필요성을 발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전히 세상에 많은 이단, 거짓 교사들 때문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거짓말하는 자들, 이단이 나타날 것을 경고합니다. 당시 항구도시 에베소에는 이방종교가 많아서, 거짓교사들이 나타나 거짓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종교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율법에 대한 집착으로, 극단적 금욕주의를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거짓교사들은 겉으로 매우 경건해보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음식도 절제하는 금욕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상은 바른 믿음, 복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극단적 금욕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다는 것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누릴 특권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불행하게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신천지나, 이상한 사이비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같습니다. 어제 수요예배 때, 김현곤 목사님의 “주 안에서” 고린도전서 7장 말씀처럼, 사도 바울은 결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바른 복음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주 안에서 허용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을 억압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삶에 참된 기쁨과 변화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늘 디모데전서에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만나는 창조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주님의 솜씨에 감탄하여 선물로 누리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함께 4, 5절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앞선 3절 하반절, 음식물에 대해서도, 사도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누릴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한편, 바른 분별과 바른 복음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세상이 가르치는 거짓 가르침, 유혹에 속아 주님 주시는 특권과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6절에서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7절, 13절, 15, 16절에서도 계속적으로 자신을 신앙으로 훈련하고 연단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경건이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유세베이아, 영어로 godliness로 번역된 경건은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해, 경건한 삶이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에 이르기 위한 조건으로, 사도바울은 먼저 우리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거짓된 가르침, 거짓 교사들의 유혹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 생각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정결해질 때, 우리는 경건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 13절에서는 읽는 것,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앞의 읽는 것은 말씀을 읽는 것, 뒤의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전도와 양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들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이어서 전도와 양육에도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사도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하는데요. 그것은 왜냐하면 곧 때가 이를 것인데,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점차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이기적으로 되어가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허탄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며 따라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전도하며,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5, 16절에서도 역시 전심전력하여, 이 일을 계속하라, 말합니다. 그 결과, 16절 마지막에,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 모두를 이 험한 세상 가운데 구원하게 된다. 전도의 열매, 구원의 열매를 거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연단하고 훈련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연단되면 내 주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날도 디모데전서의 초대교회 때처럼 여전히 거짓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험악한 세상에서 5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져서 감사함으로 세상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