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디모데전서 5:1-16

본문 : 디모데전서 5:1-16

개요
1-2절 연령별 교회 구성원을 대하는 것에 대해

3-16절 과부에 대해
A명령: 참 과부를 존대하라(3절)
B. 가르침1: 가족이 과부를 섬기게 하라(4-8절)
C. 가르침2: 명부에 올릴 과부의 자격에 대해(9-10절)
D. 가르침3: 젊은 과부에 대해(11-15절)
E. 가르침4: 믿는 여인이 과부 친척을 도우라(16절)

본문연구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돌봄의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모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누군가의 돌봄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3층처럼 자모실을 운영하여 어린 아이와 부모를 배려하고, 주일학교, 청년부를 운영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아예 교회 내에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해서, 전문인과 전문 시설을 두고 장애인, 노인 분들을 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사도바울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과부, 60세 이상 된 참 과부에 대해서 신경 써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어린 디모데에게 이런 여러 내용을 편지로 자세히 썼을까요? 먼저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담임목사로 30대에 부임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린 목회자 디모데가 혹여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마치 아버지처럼 구구절절 디모데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1,2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이 어린 지도자 디모데에게 연령과 성별에 따라, 교회 구성원들에게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가족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가족처럼 대하는 것은 진짜 내 육신의 혈육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고요. 앞선 3장 15절에 교회를 하나님의 가정으로 비유한 데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처럼. 친밀함과 존중함으로 대하라는 의미입니다. 또, 사도바울은 2절 하반절에서 디모데가 젊은 남성 사역자였기 때문에, 온전히 깨끗함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라고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의 문제는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분명 2000년 전부터 사도바울은 이렇게 온전히 깨끗함으로 라는 말을 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 문제에 조심하지 않은 사역자들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의 명예가 추락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존중함으로 대하되, 온전하고 깨끗하게 대하는 것이 교회, 하나님의 가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3절 말씀을 볼 때, 사도바울은 지금 여러 교회 구성원들 중에 과부에 주목하고 그를 존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부는 이혼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여자를 말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교회 구성원 중 특별히 과부를 돌보고 존대하라고 이야기 했을까요? 왜냐하면 당시 바울이 살았던 남성중심의 고대 사회에서는 거의 남자만 경제활동의 기회를 독식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힘이 없는 과부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거의 노예와 같이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것입니다. 사실 2000년이 지나서, 여권이 신장된 오늘날도 남녀 간 여전히 유리천장, 임금 격차 등 갈등이 남아 있는데요. 오늘과는 정반대되는 고대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의 처지는 말할 것 없이 비참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과부를 돌보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현실성 없이 교회가 모든 과부를 다 돌봐야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4절에서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여, 보답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자녀가 자녀된 도리를 다 하게 하고, 교회는 오직 참 과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과부들을 돌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특별히 9-10절 말씀에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60세 이상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고 제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들만으로 제한합니까? 여기서 말한 나이 많은 과부들은 돌볼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과부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기관이 아니면 그들을 돌볼 다른 사회적 기관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초대교회는 어떤 마음으로 나이 많은 과부들을 돌보았을까요? 바로 마태복음 2540절의 예수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멘. 디모데가 사역하던 초대교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지극히 작은 자가 이 나이 많은 과부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과부들을 위해, 교회가 나서서 경제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라고 명부 작성을 지시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가 이웃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사랑할지 과부명부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많은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교회가 못하는 일을 정부가 대신하기도 하고, 정부가 못하는 일을 교회가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개개인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지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자는 바로 복음이 없어 영혼이 목마른 자들입니다. 오늘날 육신의 배가 고픈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배가 고픈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번 태신자 작정과 행복축제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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