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 1:1-14
◎개요
1절 표제
2-5절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6-10절 더럽혀진 제단과 질책받는 제사장들
11-14절 더럽혀진 이름 여호와, 그러나 위대한 왕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은 표제에 해당하고, 2절부터 5절까지의 주제는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라고 하는 질문을 시작으로 논쟁이 시작되고, 6절부터 10절까지는 더럽혀진 제단과 질책받는 제사장들에 관해서, 그리고 11절부터 14절까지는 더럽혀진 이름 여호와, 하지만 위대한 왕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라기서는 표제가 말해주듯 여호와의 말씀, 즉 경고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라는 문장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부분은 마치 고소와 맞고소 또는 법적 다툼처럼 보이는 논쟁 형식의 첫 부분으로서 바벨론에서 돌아와 유다 지역에 거주한 포로 후기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1장에서 총독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페르시아 제국 통치 아래 학개, 느헤미야, 에스더 선지자 시대에 페르시아 총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흠 있는 제물로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백성과 제사장들을 경고할 때 언급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간 통치자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시켰음을 비난하는 의도가 포함된 셈입니다. 이 때문인지 하나님은 우주적인 위대한 왕의 통치와 지위를 확언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에돔을 심판하시므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형제의 나라 이스라엘을 업신여기고 훼방하며 바벨론을 도와 유다를 침공한 죄를 물어 그들의 산을 황폐하게 하고 산업을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폐허가 된 땅을 재건하려 할지라도 막으셨죠. 반면,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은 다시 데려와 성전을 재건하고 땅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해주셨느냐며 불신과 불만을 표합니다. 원하는 만큼 경제적 부흥이 없다는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 있어야 할 자신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아들과 종은 아버지와 주인을 공경하지만,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자신의 아버지이고 주인인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제사장들은 공경과 경외심을 상실한 채 더러운 상에 더러운 음식을 드리고 병 들고 눈먼 쓸모없는 가축을 드리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했느냐 라고 묻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둔감하고 악하고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인간 총독도 받지 않을 저는 것과 병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런 곡물과 짐승을 총독에게 드려보라며 그들의 성의 없음을 비꼬십니다. 더러운 떡으로 주님의 단을 더럽혔습니다. 백성을 지도해야 할 자들이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보이는 최소한의 공경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법인 줄 알면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짐승이 있는데도 흠 있는 것을 바꿔치기를 일삼았습니다. 그들에게 제사는 구색만 맞추어 해치워야 할 번거롭고 귀찮은 일상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아는 감춰진 마음을 무례한 행동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형식적이고 불손한 행동은 그 마음의 반영입니다.
하나님은 제단의 불을 끄고 성전문을 닫는 게 낫다고 하십니다.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누락되고 퇴색되느니 차라리 예배를 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며, 경외와 사랑이 담긴 참 예배를 원하신다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죠. 비록 그 이름이 택한 백성에게서는 경홀히 여김을 받고 있으나 그 이름은 해 뜨는 데서 지는 데까지 열방 중에 크게 여김 받을 이름입니다. 이방인들은 그 이름으로 예배하며 기뻐하시는 정결한 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온 땅의 큰 임금이며 열방으로부터 경외받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만군의 하나님으로 반복해서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영적인 변절과 외도를 부르게 되죠. 하나님은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느냐? 아직도 내 사랑을 모르느냐?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그 사랑을 또 말씀하시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심으로 대하시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합니다.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투기할 정도로 유일한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옵션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께 엄청난 무례이고 악행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신가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같이 무례하거나 아니면 건성은 없으신가요?
예배의 반복을 통해서 때로는 이러한 면이 충분히 우리에게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나태하거나 게을러지거나 우리의 마음과 열정이 조금 식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열정과 사랑을 뜨겁게 그리고 나태하거나 게을러지지 않게 하나님께 무례하거나 건성으로 대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달라고 간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