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말라기 3:13 - 4:6

◎본문 : 말라기 3:13 – 4:6
◎제목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개요
13-15절 우리가 무슨 말로 당신을 대적하였나이까
16-18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기념책
4:1-3 그날이 오고 있다
4:4-6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여호와의 날

 ◎본문연구
오늘도 새벽예배 나오신 여러분,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계대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간 세상입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입니까? 탈근대주의, 해체주의입니다. 기존의 모든 질서, 구조, 경계를 무너뜨려야 할 폐단으로 보고, 파괴, 해체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한 때 기독교 국가였던 미국과 캐나다에는 이미 동성애자들을 위한 법이 통과되어, 이제 동성애자들이 정상인들을 차별합니다. 또, 신학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인간의 상상이 만든 신화, 소설로 믿는 신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말라기의 이스라엘과 닮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귀환 후, 이스라엘의 신속한 회복, 물질적 번영을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소망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자, 실망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과연 관심이 있을까 회의, 의심에 빠졌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선지자 에스겔이 말한 다윗 언약의 회복, 예레미야가 말한 새 언약의 성취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실망 때문에, 종교적 냉소주의를 나타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본문 13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완악한 말로 대적했다 말씀하시며,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불신앙과 냉소주의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바로 14절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와 15절에 교만한 자가 복되다,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는 불신앙의 말들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처럼 기존 질서가 해체된 세계, 부조리, 부정의가 가득 찬 모습처럼, 현실적인 이득, 물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다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완악한 말, 가혹한 말이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앞의 1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 일을 행하시고,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신앙의 언어가 결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6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서로 피차 간 믿음으로 말하는,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신자들, 주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사실 우리 눈으로 볼 때, 종교적 냉소주의가 가득한 세상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만연한 곳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남기시고 그들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냉소주의와 불신이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피차 간 믿음으로 교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존중히 여길 수 있습니까?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교제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믿음의 언어로 불신의 세상을 담대히 거스르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분명히 들으시는 하나님, 기록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하며,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그 명단을 기록하셨다 하는데요. 이 기념책은 바로 생명책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며,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17절 말씀을 보면, 종말론적 심판이 강조되며 나타나는데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만 아시는 그 때에,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아끼는 아들처럼 아껴 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18절에서는 이제 의인과 악인이 분별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들이 분별될 것도 예고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 심판의 날, 종말의 날을 의미합니다. 4장 1절을 보면, 용광로 불 같은 날에, 자기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교만한 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지푸라기 불타듯, 살라 없어질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앞장 13-15절에서 이 교만한 자들은 자기 세계가 전부이고 영원할 것처럼 착각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그저 불타 없어질 연약한 지푸라기 같았습니다. 반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셨습니다. 공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마침내 이 땅에서 받은 아픔과 슬픔이 모두 치유되고, 억울함과 속상함이 하나님의 공의 중에 모두 해결됩니다. 또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그 날, 주의 도우심을 받아 악인들에게도 복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4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례와 법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19편 말씀처럼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의롭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여전히 불법이 성행하고, 모든 가치 판단 기준이 파괴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여 영원까지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시대에, 선지자 엘리야로 묘사되는 세례요한을 예정하사 돌이킬 기회를 주셨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며 세상으로부터 돌이켜야 할 줄 믿습니다. 또, 우리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이키는데 쓰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회개의 열매가 맺힐 때, 이 세상을 거스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줄 믿습니다.

댓글

Scroll to Top